신 목사의 다시쓰는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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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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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하늘에서부터 비추는 강한 빛으로 인해서 그 자리에서 엎드려지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메섹에 갔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행9:7~9). 그 만큼 큰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과 봉사로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을 했는데 도리어 그 하나님을 앞장서서 강하게 거역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울을 위해 다메섹에 사울을 도울 사람을 이미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안수하여 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행9:11~12).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은 언제나 완벽하시고 그 일을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을 때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은 믿음의 눈을 떠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와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순종을 할 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도 이미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너에게 안수함으로 보게 될 것임을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아나니아는 누구입니까? 사울은 아나니아를 소개할 때 다메섹에 사는 ‘경건한 사람! 칭찬을 듣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행22:12~13). 아나니아는 같은 동족에게 인정받는 신앙이 아주 독실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소식을 다 듣고 있었지만 스데반과 같이 순교의 정신으로 다메섹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면서 지켰습니다.
아나니아는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세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역할은 바울을 주님의 택함 받은 그릇으로 쓰이는데 사용 된 조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말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봉사하는 숨은 일꾼으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배우고 따르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 아나니아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사울은 이방사람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사울이 앞으로 담당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행9:15). ① 이방인들에게 보낼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반드시 적당한 사람을 쓰십니다. 그는 이방선교에 적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어학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 라틴어까지 두루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② 임금들에게로 보낼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회심시켜 왕들에게 복음을 전할자로 쓰실 것을 명하셨습니다. 사울은 원래 산헤드린 출신입니다. 지금 말하면 국회의원 출신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울은 사회적인 신분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③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지만 그는 히브리말을 잘 했습니다. 사울은 자기 민족에게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롬9:1~3).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주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존재일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쓰실 때 고난도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만, 주님만을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승리하였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 명령을 받고 곧 유다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형제 사울아!” 라고 부르며 안수기도를 했습니다(행9:17). 이 말은 사울의 모든 과거가 용서되고 이제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던 사울이 이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행9:18~19). 이제 사울의 바르지 못한 과거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고 정말 새롭게 변화된 사람으로 새로운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영의 눈을 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영적 소경이라는 사실 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을 열어 진리를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눈먼자였으나 이제 바울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을 끝내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바꾸어집니다. 영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므로 그의 생애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울은 새 사람된 증거로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강건해 진 후 즉시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행9:20). 영안이 열린 사람은 예수를 전하지 않고서는 못 배깁니다. 이런 체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스스로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성령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할 때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회심의 체험이 없으면 그 신앙생활은 공허합니다. 열심을 내면 낼수록 더 큰 아픔과 고통을 안겨줍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바울과 같이 어떤 시간에서든지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변화 받고 예수님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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