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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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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식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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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식목사(경인제일교회) 선거철이 다가왔습니다
보통 때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정치인들이 교회를 바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잘 알고 지내시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본인이 잘 아시는 분인데 교회에 등록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교회를 소개해 주셨으니 신앙지도를 잘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그 분은 낙선이 되었고, 그리고 교회도 떠났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우리지역에 대표적인 각 교단의 교회는 다 등록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가장 축복된 사람은 깨닫는 사람입니다.
열왕기하에 보면 ‘깨닫지 못하는 사람’과 ‘깨닫는 사람’이 나옵니다. ‘아합이 죽었다.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아하시야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아합의 죽음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은 자신이 전쟁터에 나가면 죽는다는 경고를 들었으므로 일부러 변장을 해서 죽음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연히 적군이 쏜 화살이 아합의 갑옷을 꿰뚫어서 부상을 당했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깨닫지 못합니다.
둘째, 모압이 배신한 사건입니다. 모압은 다윗 이래 100년 가까이 이스라엘을 섬기다 갑자기 배신을 합니다. 이 역시 경고였습니다.
셋째, ‘난간에서 떨어졌다’고 하는데, 여기 난간은 궁궐 깊은 곳의 왕의 별장을 말합니다. 아하시야는 불안한 가운데 안전한 곳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 결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지만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이 와중에 오히려 아하시야가 내린 결정이 무엇입니까?
병든 상태에서 우상에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하시야에게 정면으로 드러내 말씀합니다.
영적으로 어둡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무지함과 함께 고집까지 부리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군대를 파견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을 내려서 아하시야와 그의 사람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가장 큰 절망은 무엇입니까. 아하시야와 같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영의 사람이므로 육감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늘 영감을 통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벽돌이 무너졌으니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가 찍혔으나 백향목으로 대신하리라”(사 9:10). 벽돌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생각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벽돌이 무너지면 그저 다시 세우면 그만이요, 뽕나무가 찍히면 백향목으로 세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깨닫지 못하므로 결국 그 마지막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세 번째 파송된 오십부장이 나옵니다. 그는 우리에게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는 특이한 사람입니다. 먼저 그는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엘리야를 향해 ‘나는 당신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이 군대가 아하시야에 의해 움직이는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이는 군대라고 고백합니다. 엄청난 고백입니다. 이것이 그의 중심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깨닫는 사람이었습니다.
선거철을 맞이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이 인맥을 자랑하거나 권력의 힘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오십 부장과 같이 나의 인생의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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