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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이사칼럼|축복 신앙과 기복 신앙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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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규진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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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규진 목사(복지교회) 한국 개신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지난 2005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통계 시점 이전 10년간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2,373,000명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식은 개신교에겐 희소식이 아니었다. 종교 인구 성장의 가장 큰 혜택은 천주교 몫이었다. 천주교도는 2,195,000명 증가했고, 불교 역시 405,000명의 증가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개신교는 오히려 144,000명이나 줄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그 뒤로 개신교 관련 스캔들 또는 법정 소송 사건 소식이 그치지 않고 있다. 대형교회에서 목회하는 저명한 목사들이 관련된 성 추문 사건이나 돈 관련 스캔들이 대부분이다. 수십억 심지어 수백억 규모의 횡령 금액이 언급되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물론 보도 자체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라는 것은 분명하다.
위키 백과사전을 보면 미국 저명한 개신교 목사들의 스캔들 목록이 적지 않다. 그 중에는 필자가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 체류하던 지역에서 활동하던 부흥사의 이름도 있었다. 그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그의 집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 몰래 카메라에 비행이 포착되면서 충격을 주었다. 연간 8,000만 달러 이상의 헌금을 거둬들이고 있던 이 부흥사는 헌금 봉투에서 돈과 귀중품만 챙기고 기도 요청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이다. 알고 보니 수억 원이 넘는 고가의 자동차를 몇 대씩 소유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부흥사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오면 구원과 풍요를 체험할 수 있다고 전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함께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 그들 자신이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들의 메시지에서 아무런 잘못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축복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약속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찾아오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도 축복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성경은 끝부분에서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약속과 함께 다시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영생복락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선포한 축복의 메시지나 그들이 선포한 축복의 메시지를 스스로 먼저 누리고 있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아마도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맞다. 하나님이 복을 약속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복을 구해도 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시면서도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 복을 받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주시는 복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주실 복을 사모하며 잘 살고 편하게 살고 풍요롭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할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복 역시 우리가 구해야 할 이런 목적에 부합되도록 누리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우리 삶의 질서 안에서 누리고 사용하는 것이 축복 신앙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복을 구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복 신앙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바른 신앙과 잘못된 신앙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약간 변형되기만 해도 벌써 우리의 신앙생활은 크게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늘의 빗나간 기독교인의 모습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바를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성경의 교훈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정말 그런 것인지 세심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할 때다.
문제는 우리가 걷는 길이 바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주장들이 존재하고 있다. 교단에 따라, 신학에 따라, 학자에 따라 그 주장이 다르다.
어디에서 우리가 걷는 길이 바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적잖은 지면이 필요한 또 다른 주제가 될 수 있으므로 오늘은 우리의 생각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오류가 축복 신앙을 기복 신앙으로 변질시킨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이 신앙생활 전반에 거쳐 일어날 수 있는 이런 현상을 바로잡는 기준의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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