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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인천교계 화합 위해 이해와 배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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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라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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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계를 이끈 사람들 6 | 김용옥 목사 (인기총 16대 총회장)

지난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처음 들어온 성시 인천에서 한국교회의 각 교단 중앙지도부의 분열현상이 마무리되면서 인천지역 복음화를 위한 협력과 교회간의 화합, 연합사업을 목표로 지난 1963년에 발족된 인천기독교연합회.

지금은 인천의 3000여 교회와 100만 교인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지금까지 부활절연합예배를 비롯한 공통적인 선교사업 등 각 교파간의 친교 및 협동정신을 통해 인천 지역의 복음화와 성시화를 위해 주력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지금의 인천기독교총연합회가 있기까지 그동안 기도하며 터를 닦아온 인물들을 만나 라이프 스토리 및 최근의 근황과 인기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목사님께서 인기총 총회장으로 활동하실 때 비하면 지금은 양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보다 연합의 마인드가 적다는 지적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기총 총회장으로 활동하던 1977년 당시에는 인천의 복음화를 위해 의견이 하나로 잘 모아졌으며, 인천의 모든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연합과 일치 또한 아주 잘 이루어졌습니다.
인기총은 사업단체가 아니라 친목단체입니다. 그래서 친목도모를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버스를 대절해서 관광도 가고 같이 식사도 하며 교제를 나누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교회가 연합해 하나가 되어 일했던 거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인기총의 대표적인 사업의 하나가 바로 부활절연합예배라고 생각됩니다. 목사님께서 총회장이실 때 부활절연합예배의 규모나 강사 등 전체적인 상황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77년 부활절연합예배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드렸는데, 그때 모인 인원이 2만 5천여 명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스탠드가 꽉 찰 정도로 역사이레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으며, 또 여러 교회가 연합해 찬양대를 이루어 아름다운 하모니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교단에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동원을 했었고, 저 또한 감리교 감리사들뿐만 아니라 장로교와 성결교 노회장들을 찾아가 동참할 것을 계속 권면하여 많은 이들이 한데 모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연합예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활절연합예배 말고 당시에 목사님께서 총회장으로서 하신 다른 사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77년 민족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할 때 지역별로 준비기도회를 가졌는데, 인천지역은 제가 대회장을 맡아 준비기도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때 3일 동안 신흥초등학교 운동장에 만여 명이 모여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복음의 관문인 인천이 타 지역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민족복음화를 위해 열정적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1977년도에는 교회마다 배가운동이 일어났고 교회이미지도 좋아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이 또한 연합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언제 건너가셨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을 말씀해 주시고, 아울러 미국교회의 상황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1985년 5월 26일에 도미하였고 다음해 7월에 아내가, 그 다음해에 나머지 세 자녀가 미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자연 한국 유학생들 부부로 이루어진 몰간타운 한인교회에 있다가 롱아일랜드 연합감리교회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올려줄 목사 월급으로 없던 성가대를 세우고, 또 그 이듬해에는 교회학교 예산을 확충해 달라고 청원해 40명 정도 모이던 교회학교를 90~100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또 롱아일랜드지역에 입양된 한국 어린이들과 그들의 미국인 부모들을 위하여 한국을 소개하는 Korea Night 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성가대 합창, 교회학교 어린이들의 합창을 비롯해 한국의 민요, 고전무용, 농악놀이 등 다양한 한국전통문화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고 한국음식을 차려놓고 친교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입양된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또 언제 하냐고 물으며 그날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롱아일랜드교회에서 5년간의 목회를 마감하고 다시 귀국을 했지만, 그 교회는 참으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모인 성령 충만한 모범적인 이민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교회는 하향기를 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교회를 자꾸 떠나고 있는 상태이며, 겨우 현상유지를 하며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좀 더 겸손한 자세로 목회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7년 6개월의 미국 이민 목회를 끝내고 귀국하신 후 개척으로 목회를 마감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배경과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59년 3월 가좌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 개척으로 시작한 목회, 개척으로 끝내야지 하는 어렴풋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권사님의 후원과 율목교회의 지원으로 개척을 결심하고 1993년 3월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만수동에 있던 만민교회와 교회 합동 혐의를 하고 약속대로 만민교회 담임 목사에게 성문교회를 물려주고 1999년에 다시 도미하였습니다. 떠난 후에도 목회 마지막 개척교회라는 미련 때문에 성문교회를 잊을 수가 없어 매일 성문교회를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인천의 후배 교역자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인기총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40년간 목회를 하면서 오름세만 있었지 내림세가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성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화목, 관용, 지혜가 있어야 하며, 교인들을 잘 받아주고 이해하며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목회자가들은 목사가 왕이라 생각하고 성도가 한 사람이 들어오면 종 하나 들어왔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순이 생기는 겁니다. 나를 내세우면 절대 안 됩니다. 교인들 속에 들어가 교인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또 목사는 목회에 전념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교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죽을 각오를 다해 목회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연합 사업을 하려면 친교와 단합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기총이 초교파적으로 이루어진 곳이기에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화합이 이루어져야 무슨 일을 추진하든지 일을 펼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인기총 총회장 시절에 교단을 초월해 목회자들이 교회를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고 받은 사례비는 연합 사업을 위해 쓰기로 했는데 한 교단에서 반대해 이행하질 못했습니다. 반대한 교단에서는 다른 교단이 강단에 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에는시 그 교단법이 그랬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교단을 초월해 장로와 성도들이 친밀해 질 수 있고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인기총에서 시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합을 위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 주며 하나 되는 인기총이 되길 늘 바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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