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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박승숙 장로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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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라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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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인터뷰에 응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장로님께서는 인천에서 출생하신 인천 토박이로 알고 있습니다. 인천의 지리적, 경제적 측면에서 대한민국에서 인천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리적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인천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먼저, 지리적으로 볼 때 인천은 하늘로, 바다로, 육지로 사통팔달 열려있는 도시로 수출입의 관문으로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볼 때도 글로벌적 측면에서의 출발지점이며 공항, 해양, 경제자육구역 등의 조건을 근간으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특수한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내외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인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127년 전 인천제물포항을 통해 아펜젤라 선교사 내외와 언더우드 선교사로 하여금 복음이 들어온 빛과 소금의 도시로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고 봅니다.

2. 장로님하면 ‘정치’를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시의회 의장으로서, 중구청장으로서 인천의 발전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 오셨는데, 장로님의 정치 입문 과정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결혼 후에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막내 아이를 데리고 고아원, 사할린동포복지관, 장애인복지관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명절 때 봉사를 하러 갔다가 과일상자가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누가 가지고 왔냐고 물어보니까 어느 정치인이 갖다 놓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정치를 하면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하게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민정당 시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일을 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고 이어 종교홍보부장을 맡겨줘서 선거 때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더니 신한국당 시절에는 시지부 여성위원장으로 임명해 16년 동안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YS 정권 당시 지방의원 여성비례대표 공천을 선포해 홀수 번호가 여성에게 주어졌고 당의 기여도, 공적과 열정을 봐서 저에게 비례대표 1번이 주어졌으며, 그때 2대 시의원이 되어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품고 있던 꿈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겁니다.
2대에 이어 3대까지 비례대표 시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4대 때는 남구 갑 지구당 공천으로 선발되어 전국 최대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의장으로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시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시 전반에 관한 살림을 꼼꼼히 살피고 집행부로 하여금 시민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2010년까지 중구청장을 역임하면서 복지와 문화에 힘을 쏟았습니다. 중구에 있는 10개동에 어린이보호시설을 다 마련하였고 장애인 복지시설과 노인요양시설도 많이 만들어 노인 정책에도 힘을 썼습니다.
또 역사와 문화도시인 중구를 관광도시로 살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한국최초서구식공원인 자유공원을 비롯해 맥아더 장군 동상을 새롭게 옷 입히고 조명시설을 구축했으며, 원미문화거리와 차이나타운을 특구로 만들었고, 대무의모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하는 인도교를 놓아 섬까지 관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등 볼거리가 다양한 중구로 만들기 위해 섬세하게 살피며 다양한 사업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이밖에도 많은 일들을 행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보람된 일은 선교문화축제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2008년부터 어렵게 중구에서 예산을 세워 선교100주년 기념탑에서 시작된 선교문화축제가 매년마다 펼쳐지는 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념탑 앞이 황폐한 주차장이었는데, 기도 중에 공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주셔서 공원으로 조성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교문화축제를 열게 하시려고 기반을 마련하게끔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거 같습니다.

3. 지난 2010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2년여 기간이 지나는 동안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그동안의 근황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낙선 즉시 미국으로 건너가 3개월 동안 있으면서 지난날 제도권 안에 정치생활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치현장에 있기 전에 서지방여선교회 회장, 사회평신도부 총무 등 교회 안팎에서 최선을 다해 봉사했으나 시의회, 기초단체장 생활로 인해 교단 봉사를 전혀 할 수 없었는데 이제 다시 교회 안에 새벽제단을 쌓고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하나님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누리당 또는 지역에서 할 일을 하고 있으며, 그간 여념이 없어서 못 만났던 친구, 선·후배, 가족 친지와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국 걱정, 지역 걱정을 고민하며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고, 현재 중구 살림 책임자가 유고 중이라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4. 장로님께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내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릴 적 신앙생활 하시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내리교회 십자예배당 박경선 전도사의 손녀로 믿음이 5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무속시대 속에서도 부활의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자손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할아버지가 존경스럽습니다.
주일학교 시절에는 인천시내 각 교회 주일학교 대항 동화대회에 1등을 했으며, 중학생 때는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감당했고, 고등학생 때는 인천기독교 학생연합회 부회장을 지내며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5. 많은 정치적 활동과 신앙 활동을 하시면서 지금도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데, 나름대로 건강의 비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채 이외의 생식은 삼가는 편이고 일반적으로 익힌 음식은 가리지 않고 모두 즐겨 먹습니다. 물론 보신탕은 제외하고요. 그렇다고 보약을 따로 복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학생 때부터 자세에 신경을 많이 썼으며, 지금까지도 어깨와 등, 허리가 굽지 않도록 유념하고 있습니다. 의자에 앉는 자세, 서 있는 자세, 걷는 자세 등 습관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피부 관리도 특별히 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세안 이후 엄동설한에도 꼭 냉수로 여러 차례 마무리를 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육신건강의 3대 상징은 식사, 수면,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 잘 믿고 기도생활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건강을 선물로 주신 거 같습니다.

6. 장로님께서 보실 때 지금의 인천의 기독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과 앞으로 인천의 기독교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바른 자세에 대한 점수는 하나님만 매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성도가 본질을 벗어나 정신상태가 세속에 물들 때, 다시 말해 가슴을 속이고 사랑이 식었다면 아펜젤라 목사 내외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127년 전 제물포항에 들고 온 복음의 종자가 변질되었다고 보기에 그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세상을 경악케 하는 조계종의 추한 행세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오로지 부활하신 주님 앞에 다시 대못을 박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세상 사람들 앞에 부끄럼당하는 짓이 어떤 것들인지 분별하여 하나님 뜻을 이 땅에 이뤄드리는 일만이 진실이라고 봅니다.

7. 마지막으로 연합기독뉴스 운영이사님으로서 신문이 지향해 나가야할 방향을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인터뷰를 맺었으면 합니다.
☞ 신문은 보도입니다. 또 알권리가 있는 이들의 여과 없이 눈과 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교단에 몇 군데 신문이 출간되고 있으나 연합기독뉴스는 항상 정확하고 정직하며 약속을 지키는 예수 정신에 입각한 보도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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