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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도시를 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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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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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95개조 논쟁문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 비텐베르크


성경학자로서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시편강해를 시작하였다. 그는 강의를 통해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지만 스스로 성경 연구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은 로마서, 갈라디아서였다. 돌이켜본 지난 세월, 신앙생활은 모두 외형적 관습에 붙잡혀 있었다. 죄 고백과 용서는 고해성사를 통해서였는데 사제가 담당했다. 성경해석은 교황과 주교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었고,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예배에서는 침묵해야했다. 루터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면죄부였다. 그는 이렇게 비판하였다. “헌금통 바닥에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하다니!” 이곳저곳에서 면죄부로 인해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루터는 로마서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하였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이 구절에 비추어보면 형식적인 것에 의존했던 모든 관행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었다. 갈라디아서에 와서 성경학자 루터는 결정적인 구절을 만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갈 1:7). 외적인 관습에 의존하는 모든 것은 다른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는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종교적 관습에 의문을 품고 이를 토론하고자 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공개논쟁을 위해 95개 조항을 교회 문에 내걸었다.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 이후, 인문주의 영향으로 새로운 지식에 굶주려 있었다. 세계는 지각 변동하는 중이었고, 문명은 개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때마침 구텐베르크가 혁신적인 인쇄술을 발명하였는데, 이로서 루터의 95개조 논쟁문은 무수히 인쇄되어 유럽 곳곳에 전달되었다. 95개조 논쟁문의 원래 제목은 “면죄의 권능과 효능에 관한 논쟁”이었다. 그는 21조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따라서 면죄부를 설교하는 자들이, 교황의 면죄부에 의해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사면되며 구원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강직한 선언이 있을 수 있는가! 95개 조항을 내걸었을 때, 루터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어떠했는가!
▲ 루터가 95개조 논쟁문을 내걸었던 궁정교회 문. 지금은 그 조항이 청동으로 된 문에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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