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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아버지께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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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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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09년은 나의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있다. 30년 전 45세의 나이에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셨다. 요즘 회자되는 ‘사오정’이라는 말이 딱 적용되던 시대였다. 1979년 8월에 육군 하사관 생활을 마감하고 만기전역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올해 30년 전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30년 전 나는 아버지의 전역과 함께 2학기 때부터 군 자녀 등록금 지원을 못 받는다고 걱정하며 고입 연합고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올해 나의 아들도 중학교 3학년이어서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교회 목회현장 아닌 직장과 비슷한 곳에서 일하기에 아버지의 30년 전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나는 아직 정년퇴직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생각은 해보았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면 어떤 치열한 각오와 그만큼의 절망감으로 40대 중반 이후를 보낼까…. 아버지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지난 설 명절을 지나고 아버지를 뵈었을 때 조울증으로 불편하신 아버지는 옛날 생각을 하면서 분노도 치밀고 억울한 일들도 많이 기억하셨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앞날의 좋은 일 기대하고 천국의 모습을 상상하시자고 목사답게 말씀드렸다.

지금은 그렇게 힘드시지만 나의 기억에 뚜렷한 아버지의 모습 두 장면이 떠올랐다. 15년 전, 칠순잔치 해드린다고 미루다가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열어드렸다. 멀리서 오신 친척 분들께 요즘 무슨 환갑이냐고 살짝 구박도 받았지만, 뻔뻔했던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를 위해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만들어 하객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나는 그 때 아버지의 두 모습을 회상해 글을 썼다.

강원도 대진에 살 때 새벽에 이웃 노부부가 사는 초가에 불이 났는데 속옷 바람으로 사다리를 지붕에 걸치고 물을 붓는 분이 바로 아버지였다. 대학 2학년 무렵 안산의 한 교회의 저녁예배 때 정신질환이 있는 한 교우가 강단으로 뛰어가 목사님의 멱살을 잡았을 때, 순식간에 튀어나가 그 분을 끌어내 뒹구는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뿐이었다. 그 때 못난 아들은 맨 뒷자리에서 ‘어? 어?’하며 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 무렵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에서 집으로 하교할 때 영등포에서 탄 버스 맨 뒤쪽 구석자리에 앉게 되었다. 통로에도 사람들이 꽉 찼는데 고척동의 한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타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아버지, 이쪽 뒤로 오세요. 여기 앉아 가세요.’ 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길도 막히는 퇴근길 1 시간 동안 힘들게 일하신 아버지를 세워두고 나는 끝까지 앉아갔다. ‘못된 놈, 독한 놈, 아버지! 죄송합니다.’ 에니어그램 검사를 해보니 1번 ‘개혁가’ 형이라는데 실행력이 너무 없어 용기가 부족한 나는 아버지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 ‘아버지의 용기 있던 모습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2월의 어느 날 새벽 3시에 아들이 자기 방에서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가서 보니 열이 많이 났고 목이 아프다고 했다. 해열제를 먹이고 머리에 얹은 물수건을 갈아붙여주면서 기도하는데 나의 아버지가 기억났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자다가 헛것을 보고 경기를 하던 나를 감싸 안고 밤을 지새우셨던 아버지의 팔 힘이 아직도 느껴진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것처럼 제 자식을 사랑하겠습니다. 자식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용기 있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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