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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소위 존엄사 판결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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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문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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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마침내 존엄사(尊嚴死·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했다.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종결지울 수 있도록 하는 결정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삶의 최종단계에서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건강하더라도 정신적 고통이 극심한 경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고, 그리고 신체적 고통이 극심한 경우 자신의 의사에 따라 치료중단을 요청함으로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부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과 헌법이 정한 행복추구권을 존중한 판결로서 그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생명의 부정은 자신이 의식이 분명한 상태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기독교 등 종교계에서는 자기생명의 부정에 대하여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하나뿐인 생명은 오직 하늘의 뜻에 의하여서만 부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자살이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하여 증가되는 추세에서, 특별히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고통이 극단적으로 쌓여갈 때, 생명의 자기부정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차라리 생명의 부정을 부정하는 것보다 인정하자는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대법원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기 위한 기준으로 우선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을 것을 요구했다. 즉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이 상실돼 회복할 수 없으며, 연명 유지 장치가 없을 경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해야 한다는 입장을 요구했다. 또 환자 고유의 가치관에 따라 진정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볼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의사가 기재된 진료기록 등이 있을 경우 ‘사전의료 지시’로 판단할 수 있으며, 기록이 없더라도 평소의 가치관·신념에 비춰서도 판단할 수 있다고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존엄사 허용기준에 부합되는 한 반드시 소송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지만, 환자의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대한 판단여부는 전문 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거쳐야한다는 점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학계도 “존엄사에 대한 인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지난 94년 미국 오리건주가 ‘존엄사법’을 통과시켜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이후 2002년 네덜란드가 처음으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고, 미국 40개 주가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등 존엄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엄격한 가톨릭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도 지난해 11월, 16년째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여성에 대한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이번 대법원판결은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적절히 조화시킨 판결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판결은 불가피한 판결이라는 점이다. 대법원이 생명을 부정하거나 경시해서 이와 같은 판결을 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것처럼 그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적용하여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다.

 

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하는 첫 판결은 선고하였지만, 이는 이 사건의 경우에 한정된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제기되었을 대, 적용될 수 있는 법률은 아직 개정되거나 제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입법화 단계에서 , 종교계와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 등에서의 반발도 예상된다.

일전에 여당에서 지난 2월5일 ‘존엄사법안’을 대표발의를 해 놓은 상태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존엄사 허용범위를 ‘의학적 기준에 따라 2인 이상의 의사에 의해 말기상태 진단을 받은 환자로 의학적 판단상 회복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로 한정했고, 또 의료지시서 작성 전 전문의와의 상담 의무화, 2인 이상의 증인입회 후 의료지시서 작성, 국가의료윤리심의위원회 설치, 자살조력 및 환자의사에 반하는 연명치료 중단·보류 시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존엄사의 대상이 되는 환자의 기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 대리인 선정문제, 연명치료의 범위 등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각계의 의견이 엇갈려 있다. 그러므로 입법화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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