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물 분류

특별인터뷰 | "교회는 복음 진리 수호가 우선"

작성자 정보

  • 윤용상 기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지난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처음 들어온 성시 인천에서 한국교회의 각 교단 중앙지도부의 분열현상이 마무리되면서 인천지역 복음화를 위한 협력과 교회간의 화합, 연합사업을 목표로 지난 1963년에 발족된 인천기독교연합회.

지금은 인천의 3000여 교회와 100만 교인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지금까지 부활절연합예배를 비롯한 공통적인 선교사업 등 각 교파간의 친교 및 협동정신을 통해 인천 지역의 복음화와 성시화를 위해 주력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지금의 인천기독교총연합회가 있기까지 그동안 기도하며 터를 닦아온 인물들을 만나 라이프 스토리 및 최근의 근황과 인기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13대 인기총 회장으로 74엑스플로 세계복음화 대회 기여

 한국외항선교회 출범에 산파 역할 등 교회연합에 큰 역할 

 


 인천교회와 연합운동  

김광식 목사(제삼교회 원로목사)는 지난 1972년 제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 교회 부흥을 위해 주력하는 가운데 1974년 3월 30일 제삼교회에서 열린 제13차 총회에서 제13대 인천기독교연합회장으로 선출돼 인천 교계의 연합운동과 인천시 복음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74엑스폴로 세계복음화대회’를 개최하는 일에 인천 지부장으로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김 목사가 연합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인천의 교회 수는 170여개에 불과했다. 이에 김광식 목사는 가장 먼저 인천지역 교회의 성장과 복음화를 위하여 대형버스 3대를 동원하여 목회자 120명과 함께 전국에서 목회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의 교회를 순회하면서 ‘교회성장세미나’를 개최하여 교회성장은 물론 교역자 친교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전국의 많은 교회와 외국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대학생선교회 주최로 ‘CCC선교대회’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릴 때 함께 참석하는 한편 소위 ‘엑스플로74운동’의 인천지부장으로 인천복음화와 교회 성장에 기여를 했다.

회장 재직시 세계적인 복음선교선 ‘로고스’가 인천항에 정박하여 장기간 체류하며 인천과 서울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와 기관을 순회하며 선교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여 선교는 물론 교회연합과 질적인 교회성장에도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이밖에도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선교단체인 한국외항선교회가 1974년 인천 성산감리교회에서 출범할 때 회장으로 산파역할을 한 바 있다. 이후에도 지난 1999년까지 중책을 맡으면서 해외선교와 선원 복음전도에 헌신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김 목사는 인천광역시 자문위원(1974), 법무부 인천경찰청 청소년 선도갱신보호위원(1989~1995), 학교법인 제일학원 이사(1987~1995), 한국찬송가공회 위원 및 회장(1991~1993), 인천성서신학원 이사장(1991~1995), 영등포교도소 기독교교화위원장(1996~2000)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활동을 했다.

또한 교단적으로는 1980년 경시서 노회장으로 피선돼 노회 행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교단 연합사업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부일교회와 부개동제일교회를 개척하는 등 개척교회를 지원하는 일에도 헌신을 하였다. 또한 김광식 목사는 기독교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함은 물론 역사관도 투철해 인천 기독교의 미래를 내다보며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인천기독교선교문화연구회가 주관한 인천기독교연합회사 편찬을 위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초신자 육성을 위한 14단계’ ‘지금은 몰라도’, ‘후에는 알리라’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예화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가정과 신앙관계  

김 목사는 지난 1925년 7월 27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하여 평양광성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원주대학교 행정학과와 일본 동경신학원을 졸업하는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다.

김 목사는 1896년 창립된 역사가 깊은 고창교회 출신이다. 특별히 고창교회는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 3.1독립운동 33인중의 한 사람이며, 평양산정현교회를 시무하고, 무엇보다도 1907년 한국교회의 각성과 부흥운동의 주역인 고 길선주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1935년 소천한 교회로 당시 김광식 소년은 11살이었다. 증조부 때부터 3대가 장로집안으로, 4대째인 장남인 그에게 목사가 되어야 한다며 가정 예배 때 마다 어른들이 기도를 시킬 정도로 그에 대한 기대가 켰다. 결국 김광식 청년은 6.25때 월남하여 목사가 되었다.


 목회와 목회 이념  

장로교 신학교가 서울 남산에 있을 당시 졸업반이었던 청년 김광식은 1957년부터 1972년까지 16년 동안 후암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로 시무하면서 탄탄한 목회 수업을 받았다. 특별히 이 기간 중(70~71)에 성지순례 및 세계 15개국을 일주하여 견문을 넓히기도 했다.

이후 1972년 6월 1일 장로교에서는 인천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제삼교회의 제3대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뜻하지 않은 구원파 파동으로 인해 교인들을 잃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김 목사는 밤새 눈물로 기도하며, 오히려 이러한 역경을 무릅쓰고 더욱 목회에 정진하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무수한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아니했던 김 목사는 CCC 교역자 특수 전도훈련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전도활동을 목회의 우선으로 하면서 줄기찬 투지로 목회에 전력하였다.

특히 “내실 있는 신앙으로 교인들을 성령의 사슬로 얽어매는 스타일”의 목회를 지향하는 김 목사는 말씀 중심의 교인관리, 즉 구역조직으로 그물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또한 교인들에게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강조하여 교회에서는 물론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본이 되게 하는 데 비중을 두고 교인들을 양육했다.

지금도 이러한 목회철학은 변함이 없다. 김 목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8)는 말씀처럼 “교회가 세상풍조에 맞추지 말고 교회적인 근본 진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목사는 철저한 교회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김 목사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진리의 기둥이요, 성령의 집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교인이 한 몸이 되어 복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인 양 무리를 성경과 신앙적 방법으로 가르쳐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우선돼야 한다”며 후배목회자들에게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밖에도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장로교 창시자 칼빈의 “교회는 믿음 없는 사람을 믿음을 얻게 하고 그 믿음을 완성시켜 마침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일”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교인들에게 믿음을 넣어주고 그 믿음을 키워주고 믿음으로 살게 하는 일에 목회자들이 주력해야 할 것을 당부했다.

이처럼 철저하게 교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강조한 김 목사의 목회로 인해 70년대 초반부터 은퇴하기 전인 90년대 중반까지 제삼교회는 교육관 건축을 비롯해 장년 교인이 천명 이상의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미래의 교회와 인천

김 목사는 인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물론 그가 목회하고 많은 교인들을 양육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천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곳이고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있는 복음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의 교회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김 목사는 “인천은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묘(苗)자리다. 다른 지방에 비해 교회가 많고 교인 수도 많다”며 “그러나 양적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참된 교회가 되고 교인들은 모두 알곡 신자로 세상의 본이 되어 인천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인천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성시화를 이루어 나가야 함을 강조하면서 “인천사회 변화를 통해 도적이 없고, 싸우는 일이 없고, 거짓이 없는 사회로 만들어 신용이 없는 사람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살기 좋은 인천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인천의 교회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성경과 진리로 무장해야  

40여년의 기나긴 목회여정을 걸어온 목회의 선배로서 김 목사는 한 감독은 후배 교역자들에게 조언을 한다. “교회 부흥에 애쓰기 보다는 성경과 진리로 알차게 무장하는 것은 물론 교인들에게도 생활로 모범을 보이는 목회자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김 목사는 인기총을 비롯한 교회연합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목사는 “우리가 연합회를 할 때보다 구조나 조직적으로 매우 커졌고, 해야 할 일도 매우 많아졌다”며 “하지만 내 교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서 보다 큰 틀에서 복음화는 물론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때 교회가 능력이 있고 힘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히 자신이 연합회장으로 재직시 행사 때마다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여 목회자들을 격려한 것을 떠올리며, 지금의 연합회도 어렵고 힘들게 목회하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격려와 지원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