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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방문하는 야고보 / 행 2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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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방문하는 야고보 / 행 21:17-26

 

바울의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교보고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원했던 것은 아가야와 마게도냐 교회들이 준비한 구제헌금을 전달하고(롬15:25-27, 고전16:1-4) 선교사역에 대하여 보고를 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원하에 로마와 서바나에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자기의 사역 보고를 하였습니다. 바울의 사역 보고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올바른 사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전도를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기의 복음 전도사역은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지만 바울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으시고 찾으신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 순종의 사람, 믿음의 사람, 깨끗한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흔히 보고하고는 자신이 영광을 받고 박수를 받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을 칭찬하거나 높이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신앙의 모습을 오늘 날 모든 교회들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바울을 끝없이 괴롭히는 유대인들

 

바울의 복음전도 여행은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대인들 중에 개종하여 기독교인이 된 자들이 매우 많음을 들어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수가 수만 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개종은 그 사람들 중에는 율법에도 열성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바울이 증거 하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하였고 또한 아직도 전통적인 모세의 율법과 각종 규례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20절).

본문 21절을 보면 그런 개종자들은 아직도 율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언행을 하면 용납하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저들에게 있어서 바울에 대한 소문은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방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서 들려온 소문에 따르면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부인하며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문이 바울에게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같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대를 괴롭혀 온 그들은 또 예루살렘에 온 것을 들을 터이고 또 그대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지도자들은 걱정이 앞선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이같은 소문은 큰 오해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부인한 일이 없습니다. 그 율법의 바른 해석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보았고(롬7:12), 율법의 긍정적인 역할도 인정하였습니다(갈3:24). 디모데에게는 직접 할례를 행하기도 했으며(행16:3), 겐그리아에서는 자신 스스로 나실인 서원으로 삭발을 하기도 했습니다(행18:18). 그런데 잘못된 소문으로 인하여 오해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했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바울

본문 23-26절을 보면 바울은 야고보와 교회 지도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을 그들이 곧 알게 될 것이고 바울을 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텐데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바울이 율법을 준수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이 네 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24절에서“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서원한 나실인의 결례의 비용을 바울이 부담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생각을 바울에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소문만 듣고 혹시 바울이 해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야고보의 신중한 행동인 것을 안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살고자하는 타협이 아니라 효과적인 선교를 위하여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26절).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듯이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초월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유대인처럼 또는 이방인처럼 될 수 있음을 피력했습니다(고전9:20-23). 진정 복음을 위하여서라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이 효과적으로 증거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진리에서 어긋나지 않는 한 화합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아량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신용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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