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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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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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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양적 성장 정체의 위기와 함께 질적 성숙의 결여라는 내적인 위기와 함께 대사회적인 신뢰성 상실이라는 외적인 위기까지 겪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일은 바로 영성의 회복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창간기획특집으로 ‘한국교회 영성을 말한다’는 주제로 지상 특별좌담을 마련하게 되었다.

조광성 목사(송현성결교회)의 사회로 이윤재 목사(분당 한신교회), 이후정 교수(감신대, 역사신학) 세 사람의 영성분야 전문가의 지상 좌담을 통해 한국교회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영성의 올바른 의미를 되새겨 보고 한국교회가 추구해 나가야할 진정한 영성의 방향 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조광성 목사 : 2000년대에 진입한지 벌써 10년이 가까워옵니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단어가 ‘디지털시대’입니다. 디지털시대에 사람들의 욕구는 점차적으로 고도화, 다양화 개성화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은 오히려 영원한 것을 갈구하며 영성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성을 정의한다면 무엇입니까? 먼저 타종교와 비교하여 영성의 본질과 특성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후정 교수 : 21세기 현대는 디지털시대가 되어, 많은 유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현대인이 점점 더 비인간화하는 것을 보게 되지요. 왜냐하면 컴퓨터의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는 비현실, 환상과 더 조우하면서, 진정한 인격적인 사랑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성은 그러한 참 인격, 인간됨의 깊이와 내면을 터치하는 비교할 수 없는 사명을 가지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성을 정의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참된 만남과 교제를 통해 영적인 삶을 전인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완전하게 계시하셨으므로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주로 고백하는 삶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기독교 영성의 독특성은 성령의 체험에 있다고 하겠어요. 왜냐하면 성령님을 모셔 그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하나님 체험은 물론 깊은 내면의 세계를 전제합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현존과 계시가 부분적으로 존재하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영성은 마음 깊은 속에서 시작되지요. 하지만 단지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질 때 참된 영성이 실현된다고 봅니다. 또한 기독교 영성은 주님을 따르며 예배하며 세상에 그 빛을 비추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그 장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성을 가집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체험하는 것이 타종교와의 차이라고 하겠어요.

이윤재 목사 : 영성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영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의하든 기독교 영성은 몇 가지 차원을 포괄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의식적 관계이며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셋째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넷째 교회 공동체적 맥락에서, 다섯째 세계의 변화에 관련되어야 합니다. 저는 영성은 “사는 것이요(being), 살리는 것이다(doing).”, “내가 사는 것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다.” 갈2:20로 말하면 “예수로 살고 예수로 살리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자기를 죽여 세상을 살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오늘도 세상을 살리시는 성령의 사역이 고백되어 있습니다.

다른 종교도 “살고”, “살리는 것”이 영성의 본질임을 동일할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처럼, 무슨 능력으로, 왜 그리고 어떻게 살고 살리느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델이고, 성령님이 능력이다. 세상을 살리는 것이며 그 방법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내가 예수 안에 사는 것처럼, 이제는 내가 죽어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리는 것”이 기독교 영성입니다.

 


▶조광성 목사 : 한국교회는 지난 몇 년 간 기독교인의 감소현상을 경험하였는데,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쇠퇴와 영성과의 관계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윤재 목사 : 당연히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쇠퇴는 두 가지 상황 곧 교회 밖의 상황과 교회내적 문제에서 온 것인데 둘째가 더 크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많은 해결책이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 영성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영성의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이원론적 영성으로, 한국교회는 그동안 영과 육, 세상과 천당, 교회안과 교회 밖, 교회와 비 교회의 이원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이원론이 교회를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배타적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세상을 배타하다가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배타하고 있습니다. 이 배타적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점점 더 배타될 것입니다.

둘째, 사다리적 영성으로, 쉘드레이크가 영성을 분류하는 한 형태로, 사다리 영성은 좌우를 보지 않고 위로만 올라가는 영성체계입니다. 일제시대, 해방이후에는 천당을 향해 올라가더니 7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적극적 사고방식, 행복, 성공을 행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영성은 목표지향형의 영성이요 그 최종적인 목표는 자아실현 곧 성공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물질이며 성공의 척도는 아무래도 세상적 입니다.

셋째, 자기현시적 영성입니다. 한국교회 영성은 감추 인 것보다 드러내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형태도 다 소리를 지릅니다. 통성기도, 주여 3창이 대표적인 기도형태입니다. 그 기도 형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밖에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인의 지친 영혼이 교회가면 더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을 세상에 주고 있습니다. 오순절적 방언도 필요하지만 한국교회는 세미한 음성이 더 필요합니다. 좀 더 숨어 있는, 말없는 실천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이후정 교수 :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너무 유행성 프로그램, 외적 성장 위주, 물질주의에 치중했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가 물려받은 개신교회의 영적인 유산은 매우 크고 숭고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국 사회가 점점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안락함과 쾌락을 추구하는 동안 교회는 그것을 대처할 참된 영성을 점점 잃었다고 생각되어요. 단지 수적 감소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삶이 세속화되고 그 영적 생명력을 잃어갔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진정하고 바른 영성의 상실이 문제라는 것이에요. 과거처럼 깨어 기도하는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보다는 교인들의 형편을 위로하고 긍정적인 삶을 잘 살도록 덮어주는데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같이 전하고, 훈련을 통해 고난을 감내하면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길 즉 거룩한 삶에 힘쓰지 못했다는 거예요. 결국 성경적이고 초대교회적인 참된 교회와 영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조광성 목사 : 요즘 우리나라에서 무슬림의 세력의 포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영국에 이어 한국을 무슬림화 하겠다고 선포하고 나섰습니다. 선교신학적인 면에서 이에 대처하는 기독교인들이 철저하게 무장해야 할 영성은 무엇입니까?


이후정 교수 : 기독교인들의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있습니다. 무슬림도 결국은 기독교의 궁극적인 사랑으로 감화시켜 주께 돌아오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지나치게 타종교를 적대시하여 전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요. 거짓과 악과 싸우는 것이 진리의 길이지만, 그 진리는 결국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으로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교회가 바로 서고 참된 영성을 회복한다면 타종교에 그 빛을 비추어 화해와 평화와 신뢰를 이 세계에 회복하는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철저하게 무장해야 할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완전한 사랑의 복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새롭게 창조될 때, 온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윤재 목사 : 이 점에 있어서도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배타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는 정통주의를 내세우며 사실상 배타주의를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 누구도 불교나 이슬람에 구원이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구원이 아니라 삶입니다. 삶이 안 되는 데 어떻게 구원을 말할 수 있는가? 한국교회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주의(exclusivism)에서 포용주의(inclusivism)으로 가야 합니다. 포용주의는 궁극적인 구원을 위하여 지금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태도를 말합니다. 포용주의라고 해서 타종교의 구원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 있다면 개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나 구원은 결과(이벤트)가 아니라 과정(프로세스)입니다. 간디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종교전쟁은 누가 더 열심이냐가 아니라 누가 더 사랑이 많으냐고 판결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열심, 실천이 없는 교리만으로는 절대 타종교를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조광성 목사 : 경건과 영성과 성령 충만과 기도와 믿음 등의 단어들을 교회에서 혼용하여 사용하는데 의미적인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후정 교수 : 전통적으로 개신교에서는 경건이란 말로 거룩한 신앙생활을 표현하였습니다. 영성이란 말은 좀 더 현대에 와서 잘 쓰이는 말이지요. 요즈음 교회에서는 점점 더 영성이란 표현을 많이 쓰고 있어요. 성령 충만이란 말은 매우 좋은 말인데, 가끔 과연 성령 충만이 초대교회에서 나타났던 것과 오늘의 경우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리는 것이라고 보아요.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여 그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인데,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가 영성에서 중심이 된다고 보아요. 성령을 받고 은사를 통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열매가 맺어지는 인격적인 성화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요. 일찍이 초대교부들과 웨슬리는 이러한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나타냈어요. 즉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하여 우리의 인격과 성품과 삶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영성을 비추었지요. 오늘 우리 교회도 성령의 충만을 신약과 초대교회의 형상에 따라 은사와 인격, 열매에 걸친 장성한 분량과 충만함으로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이윤재 목사 : 이 용어들의 역사를 길게 쓴다면 아마 2천년 기독교 영성사를 개관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개신교에서는 영성이란 말을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영성은 좁게는 12세기 스콜라 철학의 이원론의 영향으로 인간의 육체성의 반대 개념으로 쓰이다가 13-16세기에는 성직자 계급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루터가 이 말을 사용하기를 주저했던 것은 이 말속에 담긴 공적주의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의 “영성” 혹은 “영적 사람”은 선행과 무릎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무엇이 있는 계급, 사람, 혹은 삶의 행태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이 말이 17세기부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영향력 있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영성은 프란시스 드 살, 윌리암 로에게는 devotion로, 요한 웨슬리에게는 perfection으로, 그리고 경건주의자들에게는 piety로 쓰였고, 20세기 오순절파에는 성령충만의 개념으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쓰였던 이 표현의 기조에는 "성령 안에 사는 삶"(living in the Spirit)이 있습니다. 기본 구성요인은 첫째 영적 삶의 원동력으로서의 “성령”과 둘째 그것이 나타나서 삶으로 체현된 “삶”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관계에서 다양한 표현이 사용된다고 봅니다. 아마도 “경건”은 “삶”에 더 무게가 있고, “성령충만”은 “성령”에 더 강조점이 있으며, “영성”은 이 둘 사이를 적절히 조화한 종합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조광성 목사 :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국인의 78%가 더 큰 영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소망이 되는 교회가 영성을 추구해야 하는데 교회가 올바른 영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이비 영성이 득세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영성운동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이윤재 목사 :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내용으로, 바람직한 영성운동의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영성의 핵심을 말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영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첫째. 자기도취적이며 자기개발적 이라는 것이고, 둘째. 의식적이며 제도적이며 권위적인 교회에 대한 거부가 그 밑바닥에 있습니다. 셋째. 동양종교에 대한 선호입니다. 동양종교의 특징은 자기 성찰의 종교요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진 현실에 관심이 많은 종교입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특징에서 볼 때 바람직한 영성의 방향은 첫 번째는, 제도적인 영성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현재보다 훨씬 더 교단, 교파, 교회 건물, 신학, 교리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형식은 최소화하며 내용은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교회가 지금까지 해왔던 전통으로 승부해서는 안됩니다. 전통은 좋으나 전통주의는 좋지 않습니다. 전통을 주려고 하지 말고 영을 주어야 합니다. 셋째. 영성을 교회 안으로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전 우주적인 생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자궁의 영성). 자기 과시로서 사회봉사가 아니라 생명으로서의 사회봉사, 섬김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후정 교수 : 이 시대는 너무 많이 영성을 이야기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진정한 영성이 고갈되고 오히려 포장되거나 위장된 사이비 영성들이 판을 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영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영성, 성숙한 영성을 실천하는 공동체인 교회로 거듭나는 운동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역사상 위대한 부흥과 갱신을 가져온 종교개혁, 웨슬리 복음주의, 미국 대각성운동, 한국 초기 대부흥운동과 같은 참된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의 소망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영성운동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오직 복음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회개가 있어야지요. 그저 시대에 부합하거나 세속적인 아류의 방식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나는 영적 갱신과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될 때 눈에 보이는 가치대신 영원한 가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헌신하는 거룩한 교회가 다시 태어나리라고 봅니다.

 


▶조광성 목사 :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기독교영성을 소유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자세와 방법을 말씀해주십시오.



이후정 교수 : 성도들이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참된 기독교 영성이라고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즉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지요.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거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의 메시지에서처럼 거룩함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십자가는 부활을 위해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기독교 영성 곧 복음의 핵심입니다. 먼저 깊고 성숙한 기도생활이 요구된다고 생각되어요. 기도에서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겸손과 온유로 옷 입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어요. 자기의 욕심을 앞세우는 이기적 영성에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과 섬김을 배우는 이타적 영성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얻으려면 자기를 포기하고 극복해야 하지요. 즉 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깨닫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영원한 복음을 살아가는 영성을 목표해야 하겠습니다.

이윤재 목사 : 갈2:20에 다 나와 있습니다. 첫째. 내가 그리스도 안에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둘째는 내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고 그로 하여금 살게 해야 합니다. 셋째는 그러면서 “육체”가운데 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넷째, 세상을 살리는 데 삶과 사역의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섯째는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의 방식을 늘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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