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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회 / 순교자 양용근 목사의 생애와 목회, 순교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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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용상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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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회 / 순교자 양용근 목사의 생애와 목회, 순교를 돌아본다

 

신사참배ㆍ동방요배 거부, 일제에 항거하다 순교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거부하며 신앙으로 맞서다 순교의 제물이 되었지만, 한국교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양용근 목사는 일본 법과대학을 졸업한 최고의 학력을 가진 목사임에도 작은 교회 섬기기를 고집하다가 38세에 순교의 길로 갔다. 이러한 가운데 양용근 목사의 종손인 양향모 목사(광성교회)는 2018년 2월에 칼빈대학교에서 ‘일제 신사참배 강요와 양용근 목사의 순교사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순교자 양용근 목사의 생애와 목회, 순교 이야기를 담은 ‘예수 나를 오라하네’를 출간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양향모 목사와 이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진 바 있는 신재철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다<편집자 주>

 

▣ 일 시 : 2018년 4월 4일 오전 11시

▣ 참석자 : 양향모 목사(광성교회), 신재철 목사(부산외대 교수, 초원교회)

▣ 대담자 : 윤용상 편집국장

 

윤용상 국장 : 먼저 바쁘신 가운데 이처럼 특별좌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양 목사님께서 이번에 순교자 양용근 목사님에 대해 연구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양 목사님께서 양용근 목사님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 주시는 것으로 오늘 대담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양향모 목사 : 제가 박사학위를 취득 후 처음으로 순교자에 대해 소개를 할 수 있는 자 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교자 양용근(梁龍根) 목사의 호적명은 양용환(梁用桓)으로 1905년 10월 14일에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694번지에서 양재훈, 정정랑의 4남으로 출생했습니다. 1920년인 15세에 진상보통학교(보습과)를 시작으로 1930년인 25세에 일본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35년에 손양원님과 함께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34세)에 34회로 졸업했는데 신사참배로 인한 평양신학교 폐교로 1년간은 통신으로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윤용상 국장 : 그렇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양용근 목사님의 신앙과 목회에 대해 여쭈고 싶네요?

양향모 목사 : 1920년(15세)에 맏형 양용이가 설립한 오사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1923년(18세) 9월 1일 관동대지진사건으로 조선인 대학살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살아남으로서 더욱 신앙이 두터워졌습니다. 일본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서 오사교회와 함께 세워진 오사 육영학당 교장직을 감당했습니다. 1936년에 광양읍교회에서 시무했고 1937년에 애양원 교회를 시무하다가 1939년(34세) 23회 순천노회에서 라덕환 안덕윤과 함께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1939년에 애양원 교회를 손양원 목사에게 인계하고 길두교회에 부임해서 시무했습니다.

 

윤용상 국장 : 그렇군요 그럼 양용근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여러 면에서 관련이 깊으시네요?

양향모 목사 : 그렇습니다. 평양신학교를 같이 입학했고 손 목사님이 1년 먼저 졸업 했습니다.양 목사님이 애양원교회를 손 목사님께 인계하고 떠나실 때 당회록에 보면 작은 교회로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떠나시는 것으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길두교회로 가셨다가 이듬해인 1940년(35세) 구례읍교회에서 시무를 하셨습니다. 1942년(37세)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 위반이란 죄명으로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다가 1943년(38세) 12월 5일 광주형무소에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신재철 목사 :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사는 익히 알려진 바입니다. 양 목사님께서 양용근 목사님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하셨는데 저는 두 분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친구인 양용근 목사님이 걸어가신 순교의 길을 훤히 아는 손 목사님이 언제든지 순교할 각오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아들의 순교를 믿음과 감사로 받았고 이어 순교의 길을 가시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입니다.

 

윤용상 국장 : 듣고 보니 큰 교훈이 됩니다. 사실 한 사람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양향모 목사 : 그렇습니다. 논문을 진행하면서 그런 지적을 하는 학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실제 심사위원 중에도 그런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옆에 계신 신 목사님께서 그때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야 말로 교회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음을 전제하고 한국교회와 사가들이 이런 교 회사적인 인물, 그것도 신사참배는 물론 동방요배까지 반대하다가 순교한 분을 연구하여 알리지 못한 것은 큰 과오임을 강조하라 조언을 했고 교수들도 이를 수긍했습니다.

 

신재철 목사 : 고신대학 역사교수였던 이상규 교수는 “양용근 목사님은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목회하던 중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종래 순교의 길을 갔던 호남지방 인물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이자 진실한 목회자였고, 올곧은 순교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삶의 여정은 잊힌 가운데 반세기가 훌쩍 넘었고 아무도 그의 거룩한 순례자의 여정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양향모 목사님은 분주한 목회생활 가운데서도 양용근 목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금광을 찾기 위해 깊은 광맥을 찾아 나서듯이 전국을 다니며 유관자료를 수집하고 살아계신 후손들의 증언을 채집 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양용근 목사의 거룩한 여정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양향모 목사님은 이 논문을 통해 오늘의 한국교회에 때 묻지 않는 경건한 목회자의 여정을 소개하고 순교적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교회가 새롭게 변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평가하며 감사했습니다.

 

윤용상 국장 : 대체적으로 한국교회에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분은 순교자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양용근 목사님께서 지금이라도 알려지게 된 것은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앞의 두 분과 다른 점 내지 차이점이 있을까요?

신재철 목사 : 이미 대담한대로 수많은 순교자들 중 두 분은 기억되는 분이었고 양용근 목사님은 잊힌 순교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순교자 양용근 목사님에게는 여러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을 가진 목사님이었지요, 아울러 작은 교회만 고집하여 담임했습니다. 신사참배뿐 만아니라 동방요배도 굳건하게 반대했습니다. 2남2녀의 어린 자녀들과 젊은 아내를 남기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의 길로 가셨습니다. 호남 지역의 순교자로 기록을 남긴 것도 그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 더한다면 주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순교하셨고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다가 순교하셨지만 양 목사님은 신사참배와 더불어 동방요배도 반대하시다가 순교하셨다는 것입니다.

양향모 목사 : 신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연구를 잘 했다는 마음이 더 드네요. 양용근 목사님이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사랑스러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사남 매,일본 법대와 평양신학교 졸업장, 이제 막 임직 받은 목사라는 직분과 그를 기다리는 교회의 성도들, 그토록 갈망해왔던 조국의 광복,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내던져버리고 총총히 가야만 했던 그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가정은 물론 사회적 지위나 하고 싶었던 일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목숨까지 기꺼이 버리셨던 그 분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본격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윤용상 국장 : 논문의 제목은 ‘일제 신사참배 강요와 양용근 목사의 순교사에 관한 고찰’인데 이번에 이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시면서 ‘예수 나를 오라 하네-양용근 목사의 생애와 목회 그리고 순교’로 정하셨는데 이유가 있으신지요?

양향모 목사 : 네, 이 책 제목이 된, ‘예수 나를 오라하네’ 라는 찬송은 양 목사님이 순교하기 전날 밤에 불렀으며 그의 친구이자 기도의 동지였던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의 길을 가면서 불렀던 찬송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불러주신 그 예수님이 지극히 위대한 분이시며 그분이 불러서 가는 그 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인지를 알고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따르겠다는 진실한 신앙의 고백이 담긴 찬양이어 순교하신 분의 마음을 생각하다가 붙이게 된 제목입니다..

신재철 목사 : 연합기독뉴스사와 양향모 목사님을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봅니다. 연합기독뉴스는 귀한 순교자에 대해 사실상 첫 보도를 하는 복을 받았고, 양 목사님은 가장 복음적이고 신앙적인 신문사에서 이 귀한 소식을 알리게 되어서입니다.

 

윤용상 국장 : 그런가요? 진심으로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 줄 알고 하나를 더 여쭈고 싶습니다. 이번의 논문의 의의를 정리하여 주신다면요?

양향모 목사 : 저도 감사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고신대학의 부총장을 역임하신 선교학자인 이복수 교수님이 “먼저, 본서는 저자가 순교자이셨던 종조부 양용근 목사님에 대한 연 구로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술이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본서는 저자가 순교자이신 종조부의 신앙적인 생애를 한국교회의 수난사 속에 담아내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본서는 저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내용들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종조부의 믿음을 바르게 이어가려는 아름다운 의지를 담아낸 특징이 있습니다. 넷째, 본서는 한국교회의 일제 수난기에 대한 역사를 알게 하는데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특별히 순천을 중심한 전남지역의 교회 역사에 대한 내용들을 세밀하게 밝혀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자의 조부가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주로 목회활동을 하셨던 지역은 순천을 중심한 전남지역의 기독교 학교와 교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조부와 관련된 내용들을 밝혀 나가는 일은 그 지역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본 논문은 그 지역의 지난 역사들을 더욱 자세하게 밝혀주는 귀한 자료이기도 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어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재철 목사 : 저는 양 목사님의 이 연구를 스승이신 송파제일교회 박병식 원로목사님이나. 이상규, 이복수 교수님과 같은 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축복하심을 볼 때 큰 위로가 되었 습니다. 그만큼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사의 연구는 귀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리고 양용근 목사님의 자녀들 중 특히 양영숙 권사님과 한국교회에 큰 선물이 되었다고 봅니다.

 

윤용상 국장 : 정말 바쁘신 가운데 오늘 귀한 시간을 내 주시니 감사드리고 다시한번 박사학위 논문 및 책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양향모 목사 : 저의 논문을 위해 오셔서 대담까지 해 주신 윤 국장님과 시종이 여일하게 관심과 사랑을 주신 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재철 목사 : 이번 대담으로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사실이 더욱 널리 알려져 우리 한국교회를 깨우는 데 기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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