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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비전과 기독교인의 역할 - 독일 통일 사례를 성찰하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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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그러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개인적으로 독일의 통일을 바라볼 때 부럽기 그지없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시길래 저렇게 거대한 역사적 큰 일을 일으키게 하신 것일까.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루기 힘든 통일이라는 대업이, 그것도 국제 정세의 복잡한 관계 속에 불투명해보인 거사가 어떻게 일시에 가능하게 되었을까. 서독 국경은 이미 사라져 지금은 흔적도 없다 (일부 구간 역사적 증거로 남겨놓은 부분을 제외하면). 베를린 장벽은 작게 쪼개져 관광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서베를린 국경이던 찰리포인트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동독 지역에서 더 이상 트라비라는 고물자동차를 볼 수 없다. 그곳에도 벤츠가 달리고 BMW가 달리고 있다. 자원과 돈이 부족하던 동독 시절 낡은 건물들은 보수되거나 새로 지어지고 있다. 동독 시절의 물건들이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팔리거나 일부 호사가들의 소장품이 되었다. 아직 동서독의 격차가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지만 통일 독일은 유럽연합에서 지도국으로 실력과 명분이 당당하다.

 

 우리는 얼마나 통일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여 왔는가. 서독이 동독을 대하듯, 남한은 북한을 대하고 있는가. 동독 교회가 평화교육을 기획하면서 적을 규정하지 말자고 했는데 이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다. 상대방을 원수로 규정하고 싸우는 것은 원수를 용서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동독 교회는 보다 신앙적인 길을 가르쳤다. 성경의 규범을 따른 것이다.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당시의 상황과 오늘을 대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당시 동독은 핵무기 같은 것을 보유하지 못했고, 무기로 위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동독과 전혀 다른 상태에 있지 않은가. 교회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독일은 동서독 분단 된 상태에서도 오랜 교회사적 전통 때문에 유대관계가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는 예전 동독 교회와 같은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독 교회의 교류와 같은 사역을 실제로 시도하기에 장애 요소가 너무 많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와 같이 소극적 자세만 취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달리 표현하자면 성숙해져야 한다. 성도도 교회도 성숙해져야 한다. 근시안적 접근으로는 통일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룰 수 없다. 말씀을 기억하자. 바울 사도는 장성한”(고전 13:11, 14:20, 4:13)이란 표현을 여러번 썼다. 장성하지 못한 결과 한국 교회는 통일 문제에 관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동독 교회는 천 4백만 교인이 5백만으로 줄어들어도 평화혁명을 이끌어내는 도구가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한국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영역, 내 교회에 관해서는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기울이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지는 않은지. 시대 문제에 침묵하는데 익숙하지는 않은지. 교인들이 당신들의 천국안에서 영악한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회와 역사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게토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북한을 향한,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더 외면하는 자세는 아닌지. 뼈아픈 자기성찰, 그리고 회개를 해야할 때이다.

 

 초라해보인 동독 교회, 40여 년을 사회주의 통제 아래서 핍박 당하며 왜소해진 동독 교인들, 그러나 그들이 복음에 의지하고 믿음으로 일어났을 때 그들은 1989년 평화혁명을 이루는데 귀하게 사용되었다. 평화혁명으로 가기까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있었고 그 복음적 혁명뒤에 통일이 따라왔다고 본다.

 

 한 역사가는 독일의 기독교인들이 제대로 신앙을 지켰다면 유대인들이 6백만 명이나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며, 대량학살이 훨씬 적은 수에서 멈췄을 것이라고 개탄한 바 있다. 나치의 극우파 이데올로기에 찬동했던 수많은 기독교인들(일명 제국기독교)은 동독 지역 크리스찬들이 많았다. 그들의 판단 착오와 무분별한 행동은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는데 적잖이 기여했다. 그들이 종교개혁 정신을 제대로 실행했더라면 나치가 그렇게 쉽게 권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나치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소련 공산군이 연합군의 이름으로 독일 땅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치에 부역하고, 나치로부터 잔혹한 핍박을 받은 지역, 그리고 또다시 공산 치하에서 40년 가까이 핍박받고 지극히 핍진해 있을 때 하나님은 부르짖는 그들을 돌아보시고 다시 구원의 길을 여셨다. 약할 때 강함되시는 역설적이며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난 것이다.

 

 독일 통일, 어떻게 찾아온 것인가! 믿음의 남은 자들이 복음에서 힘을 얻어 교회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날 때 역사적 변혁이 되었다. 복음혁명, 예수혁명, 평화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다시 얻게 되었다. 믿음의 선조들이 갔던 길을 묵묵히 걸어간 교회와 교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아니었을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런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늘 날에도 독일 통일 과정을 성찰하면 그 안에 성경적 모델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델이 미래 한국 역사 안에서도 성취되어 머지 않은 장래에 대한민국 남북한 통일이라는 세계사적 거사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추태화 소장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를 지내고 정년퇴직하여, 현재는 이레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B.A.),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독일문예학/기독교문학, 철학, 사회학(M.A.), 그리고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기독교문예학과 신학(Dr. phil.)을 공부했다.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 인문학, 기독교 문예학과 문화 관련 영역을 주 연구 분야로 삼아 우리 사회가 복음과 건강한 상상력으로 맑고 풍요로와지기를 꿈꾸며 활동하고 있다.

 

저서: 영화, 그 의미에 길을 묻다』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상상력의 유혹

대중문화 시대와 기독교 문화학』 『기독교 영성에 비추어 문학 새롭게 읽기』 『21세기 기독교 인문학의 전망』 『광장에서 문화를 읽다』 『101가지 이야기 신학(상 하권) 태초에 문화가 있었느니라 』 『문화의 미로에서 길을 찾다』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만화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등등.

 

SNS: antelao@hanmail.net / https://m.blog.naver.com/cko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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