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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서재필과 송재 기념공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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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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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필 동상

1898년 5월 다시 미국으로 간 서재필은 인쇄 및 문방구점을 운영하는 등 개인사업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1919년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전 재산을 정리한 자금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미국 내에서 한인연합대회 활동, 문서활동 등을 통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잡지《이브닝 레저 The Evening Ledger》와 제휴, 한국의 독립을 세계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한인친우회를 조직하여 재미교포들을 결속시키고 미국인 친우들을 모아서 독립운동후원회를 만들었다. 그 후 상해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활약,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독립 청원 문서를 제출하고, 1925년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 일본의 침략을 폭로·규탄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한 언론및 외교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1925년부터 47년까지 22년 동안은 병리학자 또는 의사로서 조용히 생활했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조국 광복의 소식을 듣게 되고, 미군정은 83세 노령의 서재필을 또다시 고국으로 불러냈다. ‘미군정의 한국화’를 추진하면서 미군정청을 47년 6월3일부터 ‘남조선 과도정부’로 불렀는데, 하지(J.R. Hodge) 사령관의 고문 겸 남조선과도정부 특별의정관으로 초빙한 것이다. 마침내 1947년 7월1일 반세기 만에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 이승만,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등 정상급 지도자들이 영접하고, 5만 명 정도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귀국환영대회를 여는 등, 그에게 거는 큰 기대를 반증했다. 그런데 서재필은 정치적인 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민주국가 건설과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계몽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매주 금요일 ‘국민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과 강연, 저술 등을 통해 국민교육과 계몽에 치중하며 통일된 근대 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해방정국을 정돈시키는데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를 정계로 이끌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백인제, 최능진, 김대중을 비롯한 1,929명이 초대 정부 대통령으로 추대하고자 출마승낙요청서를 보냈으나, 서재필은 자신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며 ‘미국시민으로 남겠노라’며 불출마 성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제헌국회가 7월20일 대통령 선거 때 그에게 1표가 나왔지만, 그마저도 그가 미국 시민권자임을 이유로 무효처리 되었다. 마침내 1948년 8월15일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1948년 9월11일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1년 1월5일 86년의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독립신문》이 창간된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1977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는 한편, 1994년 4월8일 애국지사 추모사업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던 그의 유해를 봉환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또한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 생가를 복원하고, 영정을 모신 송재사와 선양관, 동상과 독립문 건립, 전시관 등이 세워진 서재필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조선봉건왕조의 모순과 무능, 부정과 부패로 절망한 서재필에게 미국에서 접한 기독교는 정의, 평화, 평등, 독립의 종교로 다가왔다. 이처럼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개화혁신의 선두주자이자 민중계몽을 이끈 민족지도자 서재필을 비롯하여 이승만,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유영모, 이동휘, 여운형 등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망국의 아픔 속에서 나라를 바로 세우고 민족을 일깨우는 일에 앞장선 선각자요 선구자들이었다. 이처럼 초기에 한국 기독교는 역사의 중심과 선봉에 섰다. 경술국치 100년인 2010년에, 외세에 짓밟히고 동족상잔과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지금의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되기까지 나라사랑에 한평생을 보낸 선각자들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주 소 :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1024 (서재필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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