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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제주 대정교회와 제주 1호 목사 이도종의 생애와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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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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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교회 전경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도. 그러나 육지와 풍속과 말이 달라 이방 땅이나 다름없던 이 곳에 복음이 유입되어 오늘과 같은 활발한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도종 목사의 순교의 피흘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다 순교한 제주도 출신 1호 목사이자 첫 순교자인 이도종(李道宗 1891∼1948) 목사는 1892년 9월 13일 북제주군 애월읍 금성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서당 교육으로 학업을 이어가며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17세 때, 제주 선교사로 부임하여 제주도에서 맨 처음 교회를 세운 이기풍 목사의 열정적인 목회활동에 감화를 받아 예수를 영접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평양의 폭력배였다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전도자가 된 인물로, 그가 부임하던 1907년 당시의 제주도는 외지에서 온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이 때문에 서양종교를 전한다고 몰매를 맞는 등 고난을 겪었지만, 이기풍 목사는 13년 동안 사역하며 제주도 최초 교회인 성내교회를 비롯하여 삼양, 내도, 금성 등 15곳에 교회를 설립했다.

이도종은 이기풍 목사가 전도한 첫 열매였다. 이도종은 이기풍 목사의 권유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26년 34세 나이로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북 김제의 농촌지역에서 목회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1928년에는 김제중앙교회를 설립하였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일본은 기독교가 황국신민이 되는 데 지장을 준다며 교묘한 방법으로 예배를 방해하였다. 더구나 김제중앙교회 목사로 항일에 대한 남다른 견해를 가진 그는 일제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유지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하던 중, 당시 시국과 관련한 발언을 하여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갔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제주행을 결심하게 된다. ‘고향 제주도 출신 첫 목회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음의 불모지인 제주도를 은혜의 땅으로 만들자’는 다짐을 하며 1929년 고향 제주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귀포교회, 중문교회 등 10여개 교회를 개척하며 제주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활발한 전도활동을 펼쳤다.

한편 1948년 4월 3일부터 7년 7개월 동안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로 주민 3만 여명의 희생자를 낸 채 승자 없는 피 흘림으로 끝난 이른바 ‘제주도 4.3사건’으로, 교회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순회 목회를 하던 이도종 목사의 순교를 비롯해 11개 교회 16명의 성도가 무장대에 의해 피살되었고 서귀포, 협재, 조수 교회 등, 불에 탄 교회도 5동에 이른다.

▲ 순교자 이도종 목사 기념비

 


당시 이도종 목사는 고산교회 담임으로 인근 화순교회, 대정교회 등을 순회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난리 속에서도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를 오가며 예배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건의 여파가 점점 더 거세지던 1948년 6월 그는 자전거에 성경책을 싣고 화순교회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떠났다. 산을 넘는 도중, 갑자기 무장공산폭도들이 나타나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산속으로 끌려가 “양놈의 사상을 전파하는 예수쟁이”,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취조를 받았다. “예수교가 그렇게 좋다면 공산인민이 이 싸움에서 이기도록 기도 좀 해 주시겠습니까?”하는 조롱 섞인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죄 없는 양민을 죽이는 무신론집단의 승리를 위해 기도할 수 없소.” 그리고 그는 다른 10여명과 함께 두들겨 맞고 구덩이에 던져 생매장되어 순교를 당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이도종 목사는 계속 찬송을 부르고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의 시신은 대정교회 교인들이 장사 지냈으며 인근 삼방산에서 돌을 가져다 순교 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2003년 제주노회에서 순교자 이도종 목사의 기념비를 새롭게 세웠다. 대정교회에는 기념비와 기념종과 함께 있다. 아직까지 제주지역 복음화율은 7.5%(2008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밖에서 들어온 종교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이 있는 무속의 섬 제주도를 일깨우기까지는 ‘종교의 길’(道宗)이란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제주 방방곡곡을 누비다 순교를 당함으로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진 제주출신 1호 목사 이도종의 헌신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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