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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오다 나라찌(전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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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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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다나라찌목사

한국 복음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일본인 선교사들이 있다. 오다 나라찌(織田楢次, 1908-1980 한국명: 전영복) 목사도 그 중 한 분이다.

오다 목사는 1908년 1월 18일, 일본 효고현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불교주지로, 재산을 털어 절을 세울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 오다는 장차 절간을 그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부친의 바람대로 스님이 되려고 수련에 전념했으나 회의를 느끼고 17세에 절간을 뛰쳐나왔다. 고베 시내를 방황하다가 노방전도대의 뒤를 따라 고베 그리스도교회로 간 오다는 호리우찌 목사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그 후 호리우찌 목사의 권유로 간사이(關西) 성서학사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공부할 때 교회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만났다. 그는 아버지가 3·1만세운동 때 일본헌병에게 총살당했다는 말과 함께, 한일합방, 민비시해사건, 고종독살사건, 관동대지진조선인학살사건 등 일본침략과 일본제국의 죄상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오다는 일본인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이후 선교사로서 조선에 가서 일본인이 지은 죄에 대해서 사죄하려고 준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나이 21세이던 1928년 고베항에서 목포로 가는 화물선을 타고 목포항에 도착하였다(4.24). 일본인 전도자로서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이 쉽지 않았지만, 조선에 속죄하고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방 전도를 하였으며, 주로 벽촌지역을 찾아다니며 전도하고 목회하였다.

한편 일제는 1933년부터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1938년 장로회 총회의 신사결의를 앞두고 일본 기독교대회 대회장 도미다 목사는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국민의례다’, ‘이를 거부하면 비국민으로 규탄 받는다’고 선전하였다. 이에 1937년 평양 기독교회 대표자들은 오다 목사를 초청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이 강연에서 그는 “여러분! 도미다 목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입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을 어기는 죄악입니다.” 라며 역설했다. 숭실대 학생들과 의식 있는 목사들은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이 일로 오다 목사는 평양경찰서로 끌려가 강연내용을 모두 쓴 후 평양경찰서장의 교시를 받고 풀려났으나, 곧 일본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 오다 나라찌목사 부부


오다 목사는 일본에서 1941년 일본신학교(현 동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미가와시마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일본에 가서도 그는 한국인에 대한 빚진 심정으로 이후 한국인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였다. 조선 선교도 중요하지만 재일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재일대한기독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또한 한국인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꾸었다. 성(田)은 오다(織田)에서 따오고, 이름은 ‘영원’을 뜻하는 영(永)과 후쿠오카(福岡)에 있다고 해서 복(福)자를 사용하여 전영복(田永福)이라 지었다. 田자의 성씨는 입 구(口) 안에 십자가(十)가 들어있어 입으로 십자가, 즉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서의 그의 다짐을 나타내고 있다.

오다 목사는 일본교회가 한국에게 준 과거 상처를 감싸주도록 함으로 재일한국인과 일본인이 화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1970년 22년간의 교토(京都)한인교회 사역에서 은퇴하고 재일대한기독교 전도국의 간사로 있으면서 일본의 미약한 교포교회를 돌보며 교역자가 없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고 교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교회개척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 함석현과 함께

이처럼 오다 목사는 일평생에 걸쳐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전도자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5.16 민족상을 드리려고 할 때 그는 “내가 세상에서 상을 받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라며 거절을 하였다.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정책으로 신음하는 한국인들의 참상이 안타까워 죄과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고난을 겪으며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 이름까지도 개명하였다. 오다 나라찌 목사는 1980년 9월 27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나그네와 같던 재일동포를 사랑하며 진정으로 한국인을 섬겼던 선한 목자 같은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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