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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전주 서문교회와 예수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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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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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선교사 언더우드는 189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선교에 관해 강연을 했다. 언더우드의 조선 선교의 시급성에 대한 호소를 듣고 한국 선교사로 헌신을 결심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테이트와 레이놀즈, 전킨(남자 선교사)와 매티와 볼링, 레이번, 데이비스(여자선교사) 등 7명이 선교사로 파송 받아, 1892년 7월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11월 서울에 도착하여 일단 어학훈련을 받았다.

당시 호남지방은 동학교도의 거친 움직임으로 민심이 흉흉했기 때문에 한국인 조사를 먼저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인 1893년 6월, 레이놀즈 선교사의 어학선생 정해원을 전주로 보냈다. 정해원은 저잣거리를 돌며 민심을 살피는 한편 전도에 힘썼다. 1893년 6월 정해원 조사가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전주교회’(현 전주서문교회)의 시작이요, 호남 선교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1897년 7월 17일에는 레이놀즈 선교사가 전주로 내려와, 문답에 합격한 김내윤, 김창국과 여자 강씨 임씨 김씨 등 6명에게 최초세례를 베풀었다.

 

 

한편, 은송리 옆 완산에 선교기지를 세운 것이 유생들에게 알려지고 전주관아에서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현지라는 이유로 건축 중지명령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선교부는 미국 공사관의 조정을 거쳐 예수병원 자리에서부터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등이 있는 곳까지 넓은 부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전주성 사대문을 비롯하여 전주 일대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전주교회가 서문 밖에 자리 잡고 1900년 가을에 성도가 113명에 달하는 급성장으로 1905년 9월 서문 밖 현 위치에 건평 50평의 벽돌 기와지붕 예배당을 건축했다.

호남지역 선교부는 특히 교육과 의료사업에 힘을 쏟았다. 전주는 화산동과 서완산동에 기독교학교와 병원이 집중되어 있는데, 전주 서문교회를 시작으로 전주예수병원에 이르는 구간에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등을 볼 수 있다. 신흥중·고등학교는 1900년에 설립되었으며 3·1운동 당시 교사와 학생 20여명이 투옥된 전주 만세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기전학교는 전킨 선교사를 기린다는 뜻으로, 전킨(전위렴) 선교사는 호남지역 전도에 힘쓰다가 쇠약해져 1908년 1월 2일 42세의 나이로 소천 했다. 전주교회는 레이놀즈 선교사가 맡다가 1911년 전라노회가 창립되고 1912년 김병롱 목사가 부임하면서 한국인 목회자 시대를 열었다.

 


전주예수병원은 1898년 미국인 마티 잉골드가 전북 전주 성문 밖에서 진료하면서 시작되어 1899년 세워졌다. 국내에서 근대식 병원으로는 세브란스 전신인 광혜원(1884)에 이어 두 번째이며, 전주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이다. 미국 남장로교 여전도회원들이 생일을 맞아 감사헌금을 모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헌금은 가난하고 의료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은자의 나라’인 한국에 보내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1936년 건립한 초기 건물이 남아 있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현재의 예수병원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는 선교사들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전킨 선교사와 린네 데이비스 해리슨, 데이비드 랜킨, 넬리 랜킨 선교사, 박영훈 장로(예수병원 신경외과장, 6.25때 월남) 등이 묻혀 있다. 지금 호남지역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할 때, 선교사들의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으며 교회의 씨앗이 됨을 보게 된다. 순교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 곳은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들을 흠모하는 순례자들에게 믿음의 고향이며, 기도의 공원이 되고 있다.

-소재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3가 123 전주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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