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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여백|추수감사절 즈음에 드리는 시향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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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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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권사님, 김장철입니다. 김장하느라고 오랜만에 집안이 들썩들썩 했을 것으로 생각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서울의 큰아드님 가정, 인천의 작은 아드님과 고명딸 가정이 다 모여서 권사님 댁까지 넉 집 김장을 하셨을 것 아닙니까?
가을에 자손들과 함께 김장할 욕심으로 배추와 무 그리고 양념할 고추와 파도 많이 심고 가꿔 넉넉하게 거두시는 권사님의 수줍은 표정이 선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거기다가 새우젓 담가놓기 생새우 얼간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기 밴댕이 철에 절여놓기 등 평생해온 일이라서 힘들이지 않고 하시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의 넉넉한 사랑을 옆에서 체험합니다.
권사님 머릿속에는 한 해동안 할 일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매뉴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권사님처럼 빈틈없이 한결같게 해 낼 수 있겠습니까?

유 권사님, 김장철이 있는 음력으로 10월 보름날이 우리 집안 시향(時享)이 있는 날입니다. 태어난 곳에 평생 사는 집안들도 있지만 대부분 인천과 서울에서 내려오는 가족들입니다. 토요일이기도 하고 김장철이어서 시간에 맞춰 일찍 내려오는데도 차가 많이 막혔다고 하면서 “김장하러오는 자손들 때문에 강화길이 막힌다”고 돌아갈 것을 벌써 염려합니다.
유옥순 권사님, 목사가 무슨 시향(시제)이냐고 속으로 염려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사실 저도 이 문제 때문에 여러 집안 어른들과 오랫동안 의논하고 설득해서 이제 선산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강화에 남아 계시는 집안도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되었고, 도시에 나가서 사는 문중들도 젊은 사람들이 상당히 기독교 집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면서 시제를 지내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시향에 안 온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습니다.

몇 해 전 제가 강화로 오고 나서 문중총회에 참석해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젊은 후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세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시대정신을 반영해주세요. 문중의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 되었으니 시제를 시향예배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벌써 강화에도 그런 집안이 여럿 있습니다. 등등 신구세대의 난상토론 세시간만에 노인들이 양보를 하셨습니다.

남녀노소가 함께 드리는 시향예배

제수준비를 하던 돈에 오만원만 더 보태면 참석자들이 외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선산을 관리하는 찬원이 형님이 귀뜸합니다. 막걸리와 제수용품 대신에 따뜻한 커피와 음료가 준비되고, 시향예배 마치고 뒷설거지를 하고는 횟집이나 별미집으로 가서 문중총회를 합니다. 술 취한 사람이 없으니 소리 크게 날 일도 없고 그래서 회의 분위기가 부숭부숭합니다. 유권 사님, 세상이 많이 바뀌긴 바뀐 모양입니다.
“우리 아버님 돌아가시면 이 큰 문중 살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집안 장손이 목사가 되어 어떻게 제사를 모실 수 있느냐?” 그러니 가족묘지 관리하고 시향 기리고 집안 문중들 섬기려면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가 전통을 바꿨습니다.
예배의 성격은 시향예배(時享禮拜)로 규정했습니다. 제가 예배를 인도하고 문중회장이며 양도중앙교회 장로이신 영채 아저씨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설교문도 순서에 다 실었습니다. 전체가 한 목소리로 설교를 같이 읽어서 분위기를 산만하지 않게 했습니다. 개회찬송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으로 하고 마감찬송은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불렀습니다.
축도 전 광고시간에는 자손들을 소개하고 격려하고 느낌을 말하게 하는 등 문중의 공감대와 일치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식사 광고를 합니다. 시향을 지낼 때는 여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는데 예배를 드린다니까 찬송이라도 크게 불러서 예배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는 극성맞은 신앙이 일조를 했습니다.
유 권사님, 내년에는 문중 큰 며느리 권사님에게 기도순서를 맡기고, 젊은 조카에게 성경봉독을, 제일 연배가 높으신 어른에게 족보와 가승보 (家升譜) 보는 법을 강의하게 해서,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와 문중행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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