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분류

성경속세상|어찌하오리까?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쓰나미와 이어진 원전사고로 인해서 일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을 돕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죄는 밉지만 위기에 처한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냐는 뜻을 모아 일본의 어려움을 바라만 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미 수백억의 기금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일본에 전해지면서 그들도 놀라고 있는 상황이다.
한데 이번에 전해진 소식은 교과서의 내용을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하여 바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전해지면서 한국사회는 큰 딜레마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모으고 있는데 그들은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니 괘심하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국민들의 의견이 갈리는 현상이다. 즉 하는 짓을 보면 도울 필요가 없으니 모금을 중단하고 이미 모금된 것도 독도와 관련해서 사용하자는 것이고, 한편에서는 그것과 관련시키지 말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순수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러니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원인제공은 모두 일본이 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갈등해야 하는 것은 우리니 어찌해야 할는지.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독도영유권문제를 제기하는 일본의 태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약자에 대한 태도와 강자에 대한 태도, 또한 불리한 입장과 유리한 입장을 달리해서 대처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을 약자로 대하는 것이고 독도문제를 이슈화하면 할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집요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와도 영유권문제가 있지만 독도를 이슈화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은 그들이 어떤 입장인지 자증해주는 것이다.
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을 보면 “단호하게”라는 수식어가 항상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단호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단호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국민들은 더 분노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책이라는 것은 상호적인 면이 있어야 백성들도 최소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한데 언제나 독도문제가 나오면 반복되는 것은 “단호하게”라는 말 뿐이다.

“단호하게”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행동으로 옮기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실효적 지배라고 하는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단호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무엇을 단호하게 한다는 말인가. 또한 경제적으로도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주변의 해양자원을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는 주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기반시설과 정책을 마련해서 유인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어떤 소리를 하든 무대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일본이 원하는 것은 독도문제를 분쟁지역으로 인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혼자서 떠들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결코 적극적이지 않은 방법이지만 가장 적극적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동시에 국제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이용한 역사적, 실제적으로 독도가 한국영임을 알리는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한데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몇 년씩 처리되지 않고 잠을 자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화가 난다. 결국 우리 안에 문제였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법들이 제정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생각했던 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원망 할 것인가. 독도문제가 나올 때만 야단법석을 떨다가 시들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반면에 그들은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반면에 쓰나미와 원전사고 인해서 많은 재산과 인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인도적 차원에서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야 알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미운 것만 생각하면 돕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돌려대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할 수 있는 근본원리를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돕는 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담아서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욕심은 죄를 낳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지 도덕적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내면에 본성으로 자리하고 있는 속성을 전제한 교훈이다. 그래서 인간은 욕심으로 인해서 화를 자초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예측할 수 없는 공멸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본이 하는 행위가 그 전형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