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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손가정의 희망 쉼터가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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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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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권사님, 제가 아는 가정이 있는데 아버지는 사기전과로 감옥에 가 있고 어머니는 이혼하고 아이는 시집에 맡겼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졸지에 초등학교 고학년의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입에서는 늘 아이구 내 팔자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이리 많이 지었길래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합니다. 형기를 채우고 감옥에서 나올 아들이 아이들을 맡아 키울 것이란 보장도 없다고 합니다.
유 권사님, 요즘은 조손가정이 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엄마 아버지가 키워야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키우는 경우입니다. “목사님, 전에도 그랬습니다. 연년생으로 아우를 보게 되면 엄마가 너무 힘이 들어 한 아이는 할머니나 외할머니가 키워서 며느리의 수고를 덜어주었습니다. 그건 옛날부터 있었던 일인데 새삼 말씀을 하십니까?”
혼인한 부부 중 네 쌍 중에 한 쌍은 가정이 깨지는 경험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를 누가 양육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심각해집니다. 아이를 맡아도 아이의 교육비와 양육비 문제로 계속 갈등이 이어지고 급기야는 법원에 가서 심판을 받기도 합니다.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도 줄 놈이 흔쾌하게 줘야지 안 주려고 하면 복잡해지는 것 아닙니까? 또한 자녀를 맡아 키우다가 어느 쪽이든 재혼을 하게 되면 또 복잡해집니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제도의 흔적이 남아있어 아버지가 아이를 키우던 가정은 새 어머니를 맞아들이는 경우 조금 쉽습니다만 어머니와 함께 살던 가정에서 어머니가 재혼을 하게 되는 경우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유 권사님 제 주변에는 엄마 아버지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고 있는 시골로 전학을 오는 경우 대부분 그런 경우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모에 대한 배신감, 도시와 다르게 불편한 환경, 자존감이 사라진 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는 심리적인 열등감 등 우주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 아닙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깨진 가정의 조손들을 맡아서 무엇이 그리 신이 나겠습니까? 최후에 떠밀려서 억지로 마지못한 선택일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아이구 내 팔자야”하는 푸념을 하게 되고 손자손녀들이 듣게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까지 버림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존 본능이 작용합니다. 이런 가정의 숫자가 상당할 것입니다. 우리 조그마한 마을을 봐도 여럿인데 전국적으로 보면 뾰족한 미래를 만들 못을 세상천지에 심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천덕꾸러기로 크면 그 분노와 배반감으로 무장한 성인들을 사회에 쏟아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밤낮 아이구 내 팔자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이리 지었길래....
어느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는 손녀의 입에서도 “아이구 내 팔자야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하는 푸념소리를 곧잘 하더랍니다. 엄마 아빠도 없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전생에 많은 죄를 지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야하느냐는 말입니다. 어린 핏덩이인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라는 이해는 안 되지만 팔자소관이라는 방어기재에 맡겨서 살게 될 것이 뻔합니다. 소신 있고 용기백배하며 신뢰와 인정받는 분위기에서 커야하는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현실에서 교회는 무엇을 하고는 있는지? 무슨 뾰족한 전략은 개체 교회에 제공하고 있는지? 그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지....
팔자소관에 의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팔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렇게 키우면 큰 사람이 된다고 매뉴얼을 가지고 다가가는 교회들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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