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분류

성경속세상|이주민에 대한 관심을!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반만년을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우리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유엔까지 나서서 단일민족이나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자제 내지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권고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 가운데 이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국제결혼이 많아지면서 다문화가정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민족의 개념을 국가의 개념과 동일시한다면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의 구성원들은 민족에도 국가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그들은 또 다른 차별 내지는 구별로 인하여 소외되거나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곧 인권문제와 국가,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에게는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여전히 민족 중심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혈통중심의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임에도 무관심하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십만 단위로 추산되는 현실에서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에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의무 군복무도 배제시켰던 것이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약 40만 정도 밖에는 안 되는 현실인데 그나마 외국으로 이민 가는 아이들과 여자를 빼면 국방의 의무를 책임질 남자 아이들이 절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더 이상 멀리 미루어 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으로서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백성으로서 어떻게 일체감을 가질 수 있고,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게 할 것인가. 결국 국가적으로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일체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이 땅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고 국가적인 문제가 된다. 그들을 이 나라의 국민으로 만들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미래는 결코 보장받을 수 없다.
따라서 머뭇거리지 말고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대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미 다문화사회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에 맡겨놓지 말고 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교회도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변에 다문화가정이 흔하게 있는 만큼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의식을 준비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개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교단적인 입장에서 지교회들의 역할과 책임을 일깨워주고, 대안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교회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것과 프로그램, 혹은 그 밖의 대안들을 개발하고 수립하는 것은 교단이 중심되어서, 더 나아가서 여러 교단들과 연대해서 개교회들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일련의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교회가 시대적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선교적인 차원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이주민들이 대부분 동남아시아나 제3세계 국가들, 그리고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로부터 온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주민 대부분이 무속신앙, 불교나 이슬람권의 사람들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관심의 대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단지 복음 전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 개종할 것도 아니지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적인 유리함이 있는 만큼 교회는 멀리 두고 보지 말고 그들을 돌보는 일과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이 시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주민들이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터전을 잡고 적응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개종하게 되면 그들이 또 다른 사역자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잠재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미래를 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가와 교회는 공히 이주민들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한 정책과 대안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그들을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으로서 의식을 가지고 이 나라를 형성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과 미래를 위한 일이며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