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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상조 떡, 내리사랑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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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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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사님,
제 어머니가 딸아이의 이사 간 집에 가시겠다는 말씀을 계속하시는데 차일피일하다가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날을 잡고 할머니의 방문 소식을 알렸습니다. 서울 가는 김에 성경 볼 때 쓰는 안경도 새로 맞추고 아버지 다리 부러진 안경도 새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한데 묶어 서울로 출발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손주딸 다운이 집에 가는 것에 집착하시느냐고 차안에서 물었습니다. 유권사님,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박별라 고모에게 받은 내리 사랑 떡 전통
“내가 홀아씨 살림을 하다가 새로 집을 짓게 되었는데 친정에서 떡을 해오면 잘산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떡을 해올 친정이 마땅치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도 조산의 박별라 고모님이 언제 상량식을 하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입니다. 무심결에 아무 날 상량을 올린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날 박별라 고모님과 이분례 이모님이 송편 한 함지를 머리에 이고 조산과 문산 사이에 있는 가랑포 논뚝길을 건너 오셨다는 것입니다.
송씨 집안의 며느리 시어머니가 아버지 쪽으로는 고모가 되고 어머니 쪽으로는 이모가 되는 그런 관계였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날 “박별라 이 분례” 고부의 그 아름다운 내리사랑떡 사건은 평생 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만한 밭을 장만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씨앗을 챙겨서 건너오신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 하우스에 고추모를 잔뜩 파종해서는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제 어머니 박순희 권사는 내일모래면 팔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평생 떡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 뭔가를 해야 할 때면 떡을 한다는 겁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맥추감사절, 교회생일, 부흥회 등등 철따라 부활절에는 쑥떡, 가을에는 시루떡, 백설기, 맥추절에는 개떡, 교회 생일에는 인절미 등 절기마다 변화를 주면서 떡을 도맡아하면서 지금까지 왔다는 겁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젊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비켜주셔야 할 나이에 노망난 할머니라고 공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리사랑이 상부상조로 바뀔 날을 기대하며
“박순희표 절기떡”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꼭 떡을 해가지고 가서는 친정에서 떡을 해다 주면 잘 산다고 하더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친정어머니 대신이야 하는 말씀을 늘 해서 우리 어머니 별명이 “친정어머니 대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권사님, 제 딸아이 다운이가 목포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 한번 가서 보자는 말씀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친정어머니 대신 떡”을 하시려고 보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한마디 늘 덧붙이기는 내가 떡 해다 준 사람들은 다 잘산다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리고 손을 꼽으면서 아무개 아무개도 내가 떡을 해다 줘서 잘 살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떡 방앗간에서는 우리어머니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손님입니다. 일 년에 스무 번도 더 떡을 하는 떡 할머닙니다.
칠십 후반의 노인이 잡수셔야 얼마나 잡수시려고 밤낮 떡을하겠습니까. 다 내리사랑떡 아니면 상부상조떡이지요.
유권사님, 그 박순희 표 절기떡 사랑은 당신 나가시는 교회에서나 통해야하는데 우리교회 김순옥 권사에게 전화를 하셔서 “이봐요 김권사님, 취임행사에 떡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고 물으신 후 “내가 인절미로 하리다. 당일 아침에 보낼 테니 그리 아시겨.”
취임식에 인절미를 보낸다는 전언은 황당하지만 아들이 취임한다는 것에 고무된 내리사랑떡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안경 맞추러 갈 때 다운이 이사 간 집에서 당신이 반죽해서 쑥 송편을 만들어 쪄낸 것도 내리사랑떡입니다.
팔순 노인이 아직도 떡을 해서 이웃을 섬기고 자식을 섬기는 일이 우리의 기대보다 무척 오래가서 앞으로도 이십년은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그때는 아마 내리사랑떡을 잡수신 분들이 상부상조 떡으로 화답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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