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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편이요 남 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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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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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박 목사님이 얼마 전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진수가 다섯 살 때입니다.
그 나이 또래가 되면 그렇듯이 전화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따르릉” “네 진수네 집입니다.” 안부를 묻더니 이어서 “............ ”
“네 곧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리고는 주섬주섬 나가는 것이 진수의 어린 시절 놀이의 전부라는 겁니다.
이제 대학생이 된 진수는 어린 시절 소꿉장난을 하면서도 아빠 흉내를 냈던 것입니다.

늘, “곧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마나 사람들의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살았으면 아들에게 소꿉장난의 대화에 등장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목사다운 목사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오늘입니다.
유권사님, 늘 저에게 퉁명스럽지만 다정하게 하던 말 중에 “당신은 내편이 아니라 늘 남(의)편”이라고 말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목사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에게 필요이상으로 응답하면서 삽니까?
진수 소꿉장난의 전화 대화나 남편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는 다분히 목사의 현주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목사는 기도하고 말씀에만 전념하라고 했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발 벗고 나서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곱 집사를 뽑게 된 이유도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서 하늘의 소리를 듣고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교회공동체 사람들끼리의 필요는 사도들의 몫이 아니라 초대교회 일곱 집사의 일이었지 않습니까?
박목사는 목회초년병 시절, “네 곧 갈게요” 하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남편‘노릇보다 목회영역에 우선하고, 더 관심을 갖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참 살다보니 가정이 구순하고 화목해야 목회도 잘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후였습니다.
저보다 훨씬 일찍 깨달은 목사님들은 “네 곧 갈게요.”가 아니라 “제 아내와 상의해서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니면 “수첩을 보고 다른 약속이 있나 살피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단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의 시간을 우선해서 가족을 핵으로 해서 나머지는 동심원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편이요, 남(의) 편이요?
호주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일인 독립세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권사님,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최소한의 교회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가장 작은 공동체입니다.
가정이 교회이고 최소한의 공동체이므로 거기에는 가장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가장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당연히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당연히 아들이 자연스럽게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핵가족 사회, 남녀 평등사회에서는 양성평등 개념에 따라서 어머니나 딸이 가장이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장이면서 가족인 일인가족이 늘어나는 추세로 볼 때 가장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고, 해체될 때 나는 어떻게 가정을 지키고 가정에서부터 축복이 시작되는 원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진수가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놀았던 그것처럼 가정이 회복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유권사님, 오늘도 수많은 가정이 훼손에 훼손을 거듭해서 해체되고 상처입고 굴절되어 사회문제가 되는 것처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아내와 한편일 때 가정도 자녀들도 그리고 사회와 교회도 구순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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