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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학규 장로, 평안한 곳에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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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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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권사님, 지난 수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바로 춘천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달려가는 곳은 서울이나 인천에서의 조찬모임을 겸한 회의거나 장례식인 경우입니다.
강화에서 서울이나 인천의 조찬모임을 가기에 약간 버거운 거리입니다. 그런데 조찬모임을 위해서 서울이나 인천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는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가급적 발인예배에 참석한다

유 권사님, 지난 수요일에는 평소에 존경하던 장로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언제 조문을 갈까를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발인예배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출근시간과 겹치고, 저녁에 적당한 시간은 친한 주변사람들과 조문을 핑계로 만나기도 해서 발인예배는 늘 가족들과 아주 친한 친지와 교인들 차지입니다. 장례식장은 늘 밤새 법석을 떨다가 아침에는 차분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유족들과 절실한 시간을 나누는 편을 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장지까지 같이 가는 것도 제 조문원칙중의 하나입니다.
춘천 석사교회 장로였던 고 이학규 장로의 발인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중간에 방송국 동료였던 친구를 태우고 경춘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려서 평상시 발인예배가 있을 시간인 9시 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장례예식장에서 떠나서 고인이 평생 섬기던 석사교회로 운구되어 거기서 교회장으로 장례예배를 드린다는 겁니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활동량이 많았는지 관련된 교인들이 참석해서 예배당은 꽉 차 있습니다. 영아세례를 받은 남산교회, 섬기던 석사교회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학교연합회, 기드온 협회, 장로연합회, 성시화운동연합회, YMCA관련자, 이스라엘세계기독교연맹, 평신도성경구락부, 군인교회, 광염회, 기관장기도모임, 홀리클럽 등 평소 그가 관계를 맺고 살았던 단체와 기독교기관에서 장례예배에 참석해서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의 하늘나라 입성을 축하하고 거룩한 송별식을 하는 그런 자리입니다. 심지어는 젊은 시절 석사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지금은 은퇴목사가 되신 박이섭 목사가 축도 순서를 맡았을 정도입니다.

큰 그늘을 남기고 하늘로 가셨다

평소에 이학규 장로의 그늘이 얼마나 컸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긴 강화에 사는 저 같은 사람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달려갔겠습니까?
이학규 장로가 한참 성숙하게 일할 나이에 저는 방송국 차장으로 기독교춘천방송개국 실무를 맡아 내려갔다가 이학규 장로와 그의 차남인 이종성을 만나서 친해지고 방송국 개국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기독교방송 총무부장이 되어서 방송국 전체 살림을 도맡아 하는 그런 중견 실무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그의 늦둥이 아들의 이름을 이필립(必立)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유 권사님, 사람은 한번 만나면 끝까지 위해서 기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경춘고속도로를 달려 오가는 길은 참으로 인생의 긴 여백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관계를 조율하면서 살고 있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유 권사님, 20년 전쯤 됩니다. 그때 신입사원이던 이종성은 이제 중견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방송국을 개국하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지역을 감안하고,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으며, 기독교인이어야 하고, 강력한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사람을 뽑는 기준입니다.
엔지니어 기자 아나운서 총무국 비서실 경비 등의 사람들을 그런 조건으로 뽑았는데 지금 서울본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그때 공정하고 치열하게 뽑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서의 진리를 고 이학규 장로 장례예배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석사교회 담임목사인 손학균의 “녹슬어 없어지는 검이 되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검이 되길 원하는 삶을 살다간 장로였다”는 설교에 공감하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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