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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강단여백/정찬성 목사의 토요일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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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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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 달고 쓰고 떫은맛의 인생커피 즐기기

유 권사님,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제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은은한 커피 향이 거실에 잔향으로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제 집에서 그래도 부자소리를 듣는 것은 서재의 책과 커피 관련 소품들입니다. 제 주머니 사정에 비해서 사치스러운 유일한 취미는“볶은 원두 내려서 마시기”입니다. 벌써 오래된 취미가 되다보니 이런저런 기구들이 늘었습니다.

커피한잔을 마시기 위해서 필요한 기구들

커피콩을 볶는 기구, 볶아진 원두를 가는 분쇄기, 분쇄된 커피를 내리는 드립퍼와 내열 유리포트, 여과지, 얼음을 얼리는 제빙기, 커피를 담아 이동하며 마시는 텀블러, 머그컵 등등 커피한잔을 마시기 위한 기구들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거기다가 커피를 내리는 방식에 따라서는 커피메이커, 프렌치 프레스, 싸이폰, 에스프레소 머신, 캡슐머신 등등 다양하고 맛도 각각입니다.
유옥순 권사님, 쉽게 늘 마시는 봉지커피에 익숙해 있고, 맛이 들어있어서 수제 커피는 귀찮고 어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사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입맛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주워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집에 가장 기본적인 커피기구인 드립퍼와 내열 유리포트, 여과지, 드립 주전자 등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커피를 잘 마시기 위해서 청주에 있는 후배 목사 이상필이 사모와 교인들과 더불어 운영하는‘코람데오’란 선교카페에서 하루동일 실습을 했습니다. 실습하면서 스무 종류도 더되는 커피를 맛보며 시고 달고 쓰고 떫은 맛 등등이 적절하게 배합된 오묘하고 다양한 커피 맛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입맛에 맞는 커피 고르기

유 권사님, 생두커피를 볶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코람데오의 고가의 장비와 전문 바리스타 이상필 목사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가장 신선한 생두를 볶아서 가장 짧은 기간에 마시려면 전문 카페에서 공급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커피도 생물인지라 오래되면 산패가 되고 부패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더 욕심이 생겨서 카페인이 적은 더치커피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혼자 살 때인지라 제 외로움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비싼 더치커피 기구가 설치됐습니다.
원두커피를 수동커피 분쇄기로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한잔씩 내려먹는 맛과, 봉지커피를 먹는 맛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어디에 깊이 빠지면 끝을 보기 전에는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제 성격을 알고 사위와 딸이 명품 전동분쇄기를 선물했고, 언제 만나도 반가운 이웃들이 수십 개들이 전용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를 사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한사람씩 두 사람씩 저희 집에 커피 소문을 듣고 모였고 대접하는 즐거움으로 외로움을 잊었습니다. 밤새내린 더치커피를 단골 방문객에게 나눠주고 빈병을 독촉하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이재진 권사님을 비롯해서 교인들에게 기꺼이 커피를 대접하고 나누길 즐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커피 맛에도 이골이 나고 어느 정도는 맛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화의 명물 커피 가게인‘바그다드’에서는 나와 함께 거기서 만나는 목사님들을 브이브이아이피(Vvip)라고 치켜세웠고, 다섯 잔을 마시면 한잔씩 더 주는 회원카드 이름이‘선한목자’일 정도로 그곳이 아지트가 되다보니 커피맛과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치우치지 않는 맛 만델링이 귀한 이유

그런데 유 권사님, 어느 날부터인가 그렇게 커피를 즐겁게 마시고 내린 커피를 덜어가던 목사님들의 발이 드문드문 입니다. 제가 만드는 커피보다 더 신선한 커피를 발견했거나 아니면 각자가 집에서 자기식의 커피를 개발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커피전도사를 자처하는 제게는 보람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정찬성식 커피를 잡수셨으니 각자 자기식 커피를 덜어 와서 맛보이며 비교평가를 나누는 담소가 있어야 커피의리를 지키는 것인데 라고 생각하며 씩 웃습니다.
아니면 제가 혼자살고 있어서 너무 힘들고 외로울까봐 곁에 있어주고 감리사의 손발이 되어주다가 이제 결혼도 하고 감리사도 내려놓았으니 억지로 마시던 커피는 안 마셔도 되고, 함께 하지 않아도 견딜 만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커피는 나에게 외로울 때 집중하게 하고, 주변에 친구도 만들어주고, 자녀들이 일부러 제 커피 맛을 치켜세우며 즐겨 공급받기도 하는 동안 인생의 시고 떫고 달고 쓴 맛을 동시에 알게 한 고마운 존재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중간 맛 커피 만델링 한잔 나눌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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