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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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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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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권사님, 지난 주일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화도 본가에 갔었습니다. 저에게는 친정이고 제 아내에게는 시집인 셈이지요.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께서 봄을 느끼신 것입니다. 지팡이를 앞세워 주변 뜰을 거니셨습니다. 일천여 평 집터를 손금 보듯 하시는지라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자라는지 어디에 무엇을 심으셨는지 기억을 더듬어 한 바퀴 돌면 나물이 한 바구니 가득 합니다.
유 권사님도 집 앞에 참나물 심으셔서 봄내 뜯어 잡수시고 나중에는 꽃대 올라오기 전에 낫으로 깎아 나눠주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철 음식에서 찾는 봄소식

어머니가 한창일 때는 마리산 자락 한 바퀴 도시면 곱새, 취나물, 다래순, 오이순, 홑잎, 참두룹, 찔레순 등 나물이 한 짐인지라 오후에 지개를 지고 큰 웅덩이로 나오라고 하시기까지 했던 일이 기억이 납니다. 이불 싸는 싸개에 그득 뜯어 한 자루 내려놓고 다른 자루에 욕심껏 뜯어 이고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유 권사님, 우리 동네 덕정산 자락이 그렇게 나물이 많은 곳으로 유명해서 한 번씩은 봄나물 하러 오는 코스였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유 권사님 나물 밭에 제 어머니가 허락도 안 받고 다녀가신 셈입니다. 다 흘러간 옛 추억이 되었고 현실적으로 제 어머니 박순희 권사님은 허리가 나빠지셔서 집주변 오래 뜰에서 겨우 움쩍움쩍하시는 건강입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봄맞이 오래 뜰 나물시찰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씀바귀, 부추, 돌미나리, 달래 등의 어린잎을 뜯으셔서 조선간장에 조물조물 무쳐 한 종기씩 담아놓으시고 저희들을 부르신 겁니다.
풋풋 삼삼한 봄을 실컷 먹고 한 종기씩 담은 통들을 챙겨 집으로 왔습니다. 아내가 주섬주섬 나물 담긴 통들을 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화정 친정어머니가 생각난 것입니다. 자연산 봄을 느끼게 하려는 예쁜 의도가 보입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오십 평생 시집도 안가고, 일에만 빠져 살다가 늦깎이로 저와 결혼한 것이 부모님에게 크게 효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장모님께 또 작은 효도를 하는 것이라서 속으로 참 잘한다 잘한다고 응원을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요즘 이북 바라다 보이는 서해안 끝쪽 섬 볼음도에 알밴 바닷가재가 잡혀 올라온다는 연락을 받고 두 망을 샀습니다. 한 망태기는 화도 제 친정집에 한 망태기는 화정 제 아내의 친정집에 보냈습니다. 제가 제 부모를 보고 싶은 것이나 아내가 친정식구들 보고 싶은 것이나 같은 이치라고 생각이 되어서 가급적이면 핑계를 만들어 자주가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제 아내는 시집이 코앞이고 거기다가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수시로 거의 매주 찾아뵙는데 맏딸노릇은 잘 못하고 있어서 양성평등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뵙는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 권사님, 그래서 지난주일 오후에는 예배를 마치고 화도집에서 싸주신 나물을 한번 잡술만큼씩 덜어서 화정 처가댁, 제 아내 친정에 갔습니다. 바닷가재를 삶아 뜯으며 제철 나물과 함께 싱글벙글 풍성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유 권사님,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제 아버님은 나이 팔십 세신데도 봄이 오면 몸으로 본능으로 그 감각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흙살을 만지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지신다고 합니다.

현대판 자연인과 미개인

기상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계절을 느끼는 것은 현대 미개인이고, 자연과 몸이 동화되어 계절을 느끼는 것이 자연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 부모님 세대는 자연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리가 아프셔도 절뚝거리면서라도 바람결에 흙이 풀어지는 흙살을 보면서 자연의 부름에 응답하려는 몸부림이 있는 것을 보면서 말입니다.
유 권사님, 어떤 사람들은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는 것은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고 구원의 원리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손에 믿음과 소망의 말씀을 쥐어줘도 깨닫지 못하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봄나물 한 다래끼를 뜯으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고 하나님께서 새로 허락하신 계절,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하시고 새 생명을 연장시켜주심에 민감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로쇠 한잔에서 봄을 느끼고 그 신선한 생명활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돼지 앞에 진주처럼 사는 현대인들의 둔감함을 보면서 저희 어머니의 봄나물이 제 게으름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유 권사님, 하늘의 음성에 민감한 인생이 축복받은 인생이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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