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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강단여백/ 정찬성 목사의 토요일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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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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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삽살개 ‘테디’의 상상 임신

 

유권사님, 우리 집 영리한 삽살개 테디가 요즘 집안에서만 쳐 박혀 있습니다.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얼마 전 새벽 예배를 나가는데 개집에서 유기견 한 마리가 나와서 도망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밤새 둘이 다정하게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급기야 밥도 안 먹고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물만 마시는 것입니다. 걱정이 돼서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강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지부동입니다.

동물병원에 갔습니다. 영양제도 맞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습니다만 허사입니다. 동물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던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혹시 개집 안에 새끼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테디 유두가 충혈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짝 눌렀는데 젖이 나오는 것입니다. 새끼를 낳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는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일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개집 안이나 베란다 밑 흙바닥을 뒤져봐도 새끼는 없습니다. 매일 밥 주고 물도 주고, 놀아 주는 우리가 모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칩 번호 98512002926643 삽살이 테디의 혈통 자존감

 

동물병원에 다시 데리고 갔습니다. 진찰받고 심장사상충 검사하고 동물등록 칩을 몸에 심고 돌아왔습니다. 의사는 상상임신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개도 사람처럼 상상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여덟 살인 테디는 족보 있는 개입니다.

삼살개 보존협회의 혈통서에 의하면 “천연기념물 제368호, 6A607, 2007/09/08, 황색, 부견 레오 모견 순심, 마이크로칩번호 98512002926643 기록자 하지홍”등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외로 겁이 많고 착한 개입니다. 어릴 적에 마음에 상처가 있는지 명랑하고 밝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에게는 두 번 컹컹거리고는 조용한 것을 보면 교인들을 다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언덕길에서 개집 쪽을 쳐다보면 자동차 엔진 소리를 알아듣는지 출입문 자동인식 센서가 작동되면서 불이 켜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이 오는 것을 알아보는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영리한 녀석이 상상임신을 해서 주인의 애를 태우는 것입니다.

회식자리에라도 가면 개를 키우시는 분들이 갈비뼈에 붙은 살을 남겨 비닐에 싸가는 것을 보면서 “목사가 추접스럽게...”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이 바뀐 저를 발견하면서 개에 대한 관심은 무죄라는 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유권사님, 우리 삽살개 어떻게 해야 본래처럼 명랑해지겠습니까?

제가 새벽기도회 갈 때는 늘 명랑하게 반기며 ‘주인님 기도 많이 하고 오세요! 제기도도 부탁을 해요’라던 녀석이 요즘에는 끙끙 앓으며 개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개들의 생사화복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 개 삽살이 나이 여덟 살이면 환갑진갑 다 넘긴 나이인데 종족 보존에 대한 본능으로 충만해서 몸살을 앓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응답하여 주시옵소서.”이런 기도를 드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자연사할 때까지 함께 하마 일어나라

 

개를 위해서는 중성화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의사의 조언에 사람의 이기심으로 그 나이가 되도록 본능대로 살지 못한 테디가 불쌍해졌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시집보낼 생각이라는 의사를 병원에 전달하고 돌아왔습니다만 아직도 상상임신의 후유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권사님, 테디와 잘 놀아주고 간식도 챙겨주던 윤은이 서울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더 외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긴 합니다.

개도 상상임신도 하고 우울증도 겪고 주인의 사랑에 일편단심할 줄도 아는 감정의 동물인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개를 키울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일단 여섯 살 된 개를 중간에 맡았으니 더 많이 관심을 기울여서 정상적으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울 의무를 진 것입니다.

그럴 각오는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개 때문에 마음이 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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