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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목사의 강단여백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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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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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내게 들려지는 그 분의 음성

 

유 권사님, 연약한 사람이 앞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그저 도살할 어린양 같습니다. 만만합니다. 제사장이 그의 머리에 온갖 죄를 뒤집어 씌워서 속죄양을 삼습니다. 그리고 그를 광야로 끌고 가서 죽도록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가 사해졌다고 감사합니다. 광야에서 죽은 속죄양 때문에 나는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사야는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어린양의 피가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흘렀고 사람들의 허물 때문에 죽었습니다.

유 권사님, 주님께서는 단번에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속죄양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인 겁니다. 이 어린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목자를 참 목자라고 했습니다.

 

목장과 목자 뒤에는 누가 계실까

 

만일에 목장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세계는 나의 일터 혹은 교구’라고 말씀하신 요한 웨슬레 목사의 생각도 목장과 목자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염두에 둔 발언이며 행동강령입니다.

우리 속회에서 나에게 따따부따하고 같지 않아 보이는 속장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생활 속에서 가리는 시시비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에서 하는 일에 관한 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속회에서, 선교회에서, 크고 작은 모임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고 앞을 볼 때 거기 서서 그 온갖 모욕을 당하며 서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고 추스를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인 성도인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님, 그리고 나를 위해서 속죄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성부 하나님, 그래도 뭘 모르고 날뛰는 제자들을 향해서 다시 오신 성령 하나님을 기리는 절기가 다가옵니다.

반년 가까이 이어지는 삼위일체 절기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절기와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절기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절기를 살고나면 삼위일체의 절기가 계속되어 한해의 결실을 추수하고 교회력으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찬송가를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

 

성부 하나님의 절기도 살았고(63-79),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공생애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승천 하신 후 다시 오심을 약속하시기까지(80-181)이어집니다. 이어서 성령께서 오심을 기억하는 절기까지 이미 지나갔습니다(180-206).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에 속한 이들과 함께 교제하고 헌신해서 봉사하고(207-223), 천국과 구원의 길을 약속하시고(234-289), 거룩한 그리스도의 삶을 이루며 전도와 선교에 앞장서자고 말합니다(290-494).

이렇게 살다보면 나를 구원하심에 감격해서 전도하고 세계를 향해 선교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에 대한 사명(495-549)과 그런 행사와 절기에 고백하는 절기의 찬양들(550-594), 그리고 교회공동체의 각종 예식(595-613)에서 특별히 찬양할 노래들을 모아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시기하고 욕하고 비난하길 반복할 때도 경배와 찬양(614-624)을 계속하며 예배에서 기도와 말씀과 찬양 그리고 축도 후에도 반드시 찬양으로 응답하라고 했습니다(625-645).

유 권사님,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의 순서가 곧 우리 신앙생활의 지침입니다.

더듬더듬 살펴 찾는 동안에 어느덧 찬송가의 배치를 이해하고 일부러 찾아 부르기를 반복하는 동안 우리 삶의 뒤에서 인도하시는 분의 존재가 더욱 크게 반영될 것이 분명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크게 듣는 성도들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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