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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매봉교회와 한국의 에스더 유관순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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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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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봉교회 전경

충남 천안 병천면에 위치한 매봉교회는 유관순 열사가 부모 형제와 함께 어린시절부터 출석한 모교회로, 천안지역 독립만세 운동의 거점역할을 감당했던 곳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 항일운동을 펼칠 때 매봉교회 성도들이 군비를 마련해 도왔던 일을 이유로 일제는 교회를 불태웠고,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 가담한 교인이 82명에 달하자 다시 한번 교회를 불태웠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수난에도 굴하지 않고, 1908년 지역유지인 유빈기,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씨, 조병옥 박사의 부친 조인원 씨 등 성도들은 불굴의 믿음으로 힘을 합쳐 교회를 재건하였다. 이처럼 매봉교회성도들은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해 상처받고 있을 때 몸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하였다.

한편, 3·1 만세운동의 함성이 전국으로 퍼져 가던 1919년 3월 3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안고 고향으로 내려온 18세의 유관순은 바로 다음날 있을 큰일을 앞두고 매봉교회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원수 일본을 물리치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옵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과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그리고는 매봉산에 올라 만세운동을 알리는 봉화를 올렸다.

마침내 1919년 4월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매봉교회 전교인을 포함하여 총 3,00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이 중 19명이 일제의 총칼에 유명을 달리했고 그 가운데는 유관순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관순은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곧바로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누가 시켰느냐”는 심문에 “하나님이 시켜서 했다”고 당당히 맞서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조국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유관순은, “손톱이 빠져 나가고, 귀와 코가 잘리고, 손과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열아홉 꽃다운 청춘을 불사르며 감옥에서 1920년 9월 28일 짧은 생을 마쳤다.

이처럼 유관순은 기독교적인 희생정신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의연히 일제의 재판권을 부정할 수 있었다. 나아가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일제에 대해 민족적 자존을 지키며 죽음으로 거룩한 순교자의 반열에 들었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한편 만세운동으로 매봉교회는 일제에 의해 불타버리고 집회금지령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교회가 사라지는 듯 보였지만, 해방 후 1967년,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이화여고가 1967년 개교80주년을 맞아 새로 예배당을 지었다가 그 후 1998년 감리교회 남부연회와 충청연회가 힘을 합쳐 다시 재건축하였다.

우리나라가 현재 역사적으로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가가 되고,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유관순 열사와 같이 자신을 헌신한 위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순국선열들의 신앙과 애국정신을 본받는다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주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338-6 매봉감리교회 (담임 박윤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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