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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여백 1 | 정 목사의 講壇餘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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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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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성 목사 (영은감리교회)


유 권사님 초라한 월동준비에 몸이라도 상하지 않으셨습니까? 제 서재에는 연탄난로를 놓으니 얼마나 따뜻한지 모릅니다. 권사님과 매주 신문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정해진 강단에서 증거 되는 모든 이들이 함께 듣는 말씀이 아니라 강단살이를 하면서 부족한 것, 걸러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주일에 주신 말씀은 강단에서 선포하고, 주신 말씀을 해석하고 남은 여백의 이야기는 권사님에게 이렇게 매주 편지처럼 쓰려고 합니다.

권사님 사실 목사는 한평생 강단의 말씀을 준비하고 증거 하는 일로 살아갑니다만 늘 홈런을 날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스스로 생각할 때 타율이 너무 낮아서 하나님의 방출을 염려하며 고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주일은 어김없이 정확하게 다가와서 또 고민하게 하고 한숨 돌리면 또 돌아오길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늘 쌀밥 같은 기름진 꼴로만 증거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때로는 잡곡이 섞이고 흉년에 나물죽 같은 양식이 일용할 양식일 때는 전하는 이나 말씀을 받는 이 모두가 짜증입니다.

강단에도 희노애락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몰라도 목회자 자신은 잘 압니다. 강단에는 치열한 준비와 넘치는 은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강단에는 유머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직사포와 같은 말씀도 있지만 곡사포와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씨앗 같은 말씀이 있는가하면 가랑비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하늘나라 이야기도 있지만 땅의 이야기도 있게 마련입니다.

주신 말씀을 주신 이의 뜻에 따라 전할 때도 있지만 너무 추상같아서 수채화처럼 엷게 그려 전할 때도 있습니다. 사진처럼 정확하게 주신 말씀을 전해야 할 때도, 아침볕의 부드러움을 통해서 찍어야 할지, 아니면 한낮의 강렬한 빛을 통해서 조리개를 맞춰야 할지는 전하는 이의 생각이 더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강단의 여백이라고 해도 좋을듯합니다.

제가 30년 가까이 살아보니 강단에도 분명히 여백이 있더라고요. "주님 말씀 하시옵소서 듣겠나이다."라고 기도드려 응답을 주셨는데도 그 응답을 전하는 데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시절마다 전하는 이의 계층마다 달리 해야 하는 애달픔이 있더라고요.

말씀하심과 듣고 전하는 이의 사이에는 어떤 여백이 있을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빛과 어두움만 있지 않습니다. 빛과 어두움 사이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흑백이 아닌 무지개 색이 있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저는 강단과 교회, 집 안팎에서 살면서 일어나는 얘기들을 흑백의 조화가 아니라 무지개빛깔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직선적으로가 아니라 무지개의 곡선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합니다. 유 권사님, 흑백 사이에 둥근 모양의 무지갯빛 찬란한<강단여백>에서 매주 만나십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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