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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이 아닌 신분의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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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명품자녀 만들기 – 수준이 아닌 신분의 관점입니다.

 

명품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의 긍정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감정적 대화패턴이다. 즉 감정이 섞인 자극과 반응이 관계를 파괴시키고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감정은 사고의 문을 닫히게 하며, 이성적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 감정적으로 자극하고 반응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자녀의 문제 앞에서는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해 버린다.

칼 로저스의 인간관을 통해 자녀라는 한 ‘인간’을 어떤 자세를 가지고 관계해야 할지를 살펴보자.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는 1902년 1월 8일 시카고 외곽 오크 파크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매우 엄격하고 완고한 율법적인 가정 분위 속에서 자라면서 독서를 많이 하였다. 1920년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 농업학과에 입학을 하고 2학년때 기독교 사역자로 소명을 받았다. 1922년에(20세)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 기독학생 연합회에 참석하고 6개월간 아시아 문화를 체험하였고 귀국 후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신학교에 입학후 자신이생각했던 신학과 실제로 접한 신학 사이의 차이로 컬럼비아 대학교 임상심리학으로 전공을 전환하여 1928년에 석사학위, 193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칼로저스는 이후 인간중심 상담이론으로 인본주의 상담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기존의 지시적이고 교육적인 기법을 탈피하였다. 칼로저스의 인간중심, 인본주의라는 용어는 보수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이론이었다.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의 가치를 지향하는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이론은 사탄의 이론이라고까지 하였다. 신학적 인간관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에서 출발하지만 로저스의 인간관은 “모든 사람은 자기실현 경향성을 가진 긍정적인 존재이다”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로저스의 인간관이 기독교적 인간관에 배치된다고 보기 보다는 죄인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관점, 복음 안에서 죄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싶다.

로저스는 인간중심적 태도에 대해 세가지 관점을 이야기 했다. 첫 번째는 일치성(진솔성)이다. 상담자가 그때 그때 마다 경험하는 자신의 태도나 감정을 속이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개방하는 진솔한 태도를 상담적 관계에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상담자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공감적 이해이다. 공감적 이해는 상대방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개인적인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태도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함께 눈물을 흘리신 것은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느끼시고 이해하신 공감인 것이다. 세 번째는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존중)이다. 상대방의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윤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모습 그대를 수용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것은 죄를 합리화시켜주거나 편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를 아무런 판단 기준을 가지지 않고 받아들임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묻지 않으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옮겨버리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시고 받아들여주셨다.

진솔성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의 기준일 것이다. 과연 나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인가? 속거듭난 속사람을 따라 행동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애를 쓰고 있는가?

공감적 이해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인간의 하나님의 자리로 올리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리로 내려 오셨다. 눈높이란 내려가는 것이다. 나는 과연 자녀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자녀를 만나고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기준으로 끌어 올리려고 하는가?

무조건적 수용은 수준이 아닌 신분의 관점에서 죄인들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시고 응답하시는 것은 우리가 응답받을 만큼 잘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은혜의 보좌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자격(자녀)의 신분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셨는데 인간은 죄를 묻고 따지고 처벌한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처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잘못이라도 그분 앞에 자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때 자녀는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자신의 문제를 부모에게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명품자녀를 만들기 위해 먼저 부모의 태도와 자세를 점검해 볼수 있기를 바란다. 수준이 아닌 신분의 관점으로 자녀를 대할수 있도록....

김망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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