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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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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준의 마음성형

 

엄마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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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학년 남학생으로 또래에 비해 큰 키의 앞이마가 반쯤 보이는 일자 머리에 색갈이 다른 이어링을 하고 링 두 개가 연결된 메탈 반지를 낀 청소년이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 왔다. 이 남학생은 최근 학교에서 평가한 심리검사 1차 및 2차 평가에서 자살사고가 높게 보고되어 정확한 종합심리검사 및 진료가 필요하여 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되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엄마와 함께 내원하였다.

엄마의 정보에 의하면, 자녀가 원하지 않았던 임신(unwanted baby)으로 임신 8개월이 되어서야 유산을 포기하고 ‘이제는 낳을 수 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에 출산을 하였다 했다. 그래도 그렇게 태어난 아들인데도 밤에 보채지도 않고 잘 자고, 낮에도 울지 않고 잘 놀아 주어 키우기 쉬운 아이(easy baby)였다. 성격이 꼼꼼하고 눈치가 아주 빨라서 어른들의 사랑을 뜸뿍 받았다. 다만 워낙 체격이 말라서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여 여름에는 반팔 셔츠나 반바지는 입지 않았다. 싫증이나 짜증을 잘 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에는 항시 두려움이 컷다. 친구들은 주로 이성인 여자 아이들이었으며, 체격이 작고 왜소하며 목소리나 얼굴이 여자아이 같다고 ‘네가 있어서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이야’라고 여자 아이 취급하면서 친구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고 자랐다. 여동생은 태권도 선수이며 활발하고 명랑하여 부모님이 자기보다 여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생각하였다.

엄마와 나란히 진료실 의자에 앉아 있어 먼저 엄마에게 물었다.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떤 점을 도와주면 좋을까요? 제 질문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강하고 큰 목소리로 ‘아무 문제 없는데요.’ 라고 답하였다. 엄마의 재빠른 대답이 믿음이 가지 않아 재차 질문을 하였다. 학교에서 실시한 1차, 2차 자가보고식 검사에서 ‘자살사고’가 보고되었고 그래서 3차 정밀검사를 위해 저희 병원에 오셔서 검사했는데, 그 동안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지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저런 문제가 있었겠구나?’라고 짐작이 가는 것이 없는지요? 그래도 엄마는 강하고 빠른 말투로 똑 같은 대답을 하였다.

필자는 엄마의 대답이 진위가 문제가 아니고 엄마가 자신의 자녀에 대한 눈높이를 모르는 것 같아서 자녀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인식하게 해주기 위해 옆에 같이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바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눈치를 보는 듯하여 자기 속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 같아 필자는 엄마를 진료실 밖에 내보냈다.

아이는 너무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치고 너무도 세심하고 매우 자세히 표현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자살 생각을 하였고 며칠 전에는 옷걸이를 모아 목을 메고 죽으려고 시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의 마음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엄마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유방암 말기로 진단받고 나서 엄마가 우울해 하였고 작년 겨울에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어 하세요’라고 말하였다. 누가 엄마이고 누가 자녀인가 싶었다.

임상심리학적 평가 결과는 전제 지능이 같은 나이 또래보다 ‘평균 상(high average level)’이었고 실제 잠재능력은 ‘우수 수준(superior level)’정도로 추정되었다. 전반적인 언어능력이나 실행기능, 사회적 인지기능과 관련하여 평균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이고 극히 회피적이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자존감이 저하되어 있고 만성적 우울감, 무기력감 등 부정적 정서가 있고 심리적 에너지가 매우 낮아 있었다.

엄마를 다시 진료실로 들어오게 하였다. ‘친정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힘드시겠군요?’라는 치료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친정어머니’라는 단어에 1초가 무섭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또 한번 놀라게 한 상황이 있다. 당신의 아들이 자살생각을 초등학교 2학년부터 있어 왔으며 며칠 전에도 옷걸이를 모아 자살을 시도 하려다가 가족들 생각에 포기한 사실을 아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였다. 더 놀라게 한 엄마의 반응은 이렇다. 휴지로 눈물을 닦으시며 친정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우울한 감정반응과 달리 “우리 아들은 자살도 못해요, 그럴 용기도 없어요.” 진료실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엄마 마음상태를 파악하고 있으며 엄마 마음을 걱정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안쓰러웠다. 누가 엄마이고 누가 자녀인가? 나도 우리 아들, 딸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고 있을까? 각자 자기 자녀를 관찰하며 살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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