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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함께한 교육선교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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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욱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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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함께한 교육선교의 발자취’란 주제로 오는 23~30일 까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일정강점기 기독교계 사립학교 자료전시회를 갖는다.

“주상께서 미국 상선의 내해 항해와 미국인들의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는 일, 전신 설치의 일을 허락하시다.” 초기 한국기독교회의 평신도 지도자요, 교육자, 그리고 사회운동가로 활약했던 좌옹(佐翁) 윤치호 선생(1865-1945)은 1884년 7월 3일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겨놓았다.

이는 당시 한국선교 탐색차 서울을 방문했던 일본 주재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 S. Maclay)에게 고종이 선교 사업을 허락한다는 소식을 그 현장에 있던 윤치호가 보고 들은 대로 기술한 내용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선교사업의 윤허는 일정한 제약이 있었다. 즉, 병원과 학교를 통한 사업만이 허락되었고, 교회설립을 통한 직접적인 복음전도의 활동은 아직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고종이 윤허했던 병원은 의료선교로, 그리고 학교의 설립은 곧 교육선교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년 사이에 알렌(H. N. Allen), 스크랜튼(W. B. Scranton) 등 의료선교사들이 들어와 의료선교활동을 펴나갈 수 있었고, 더불어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언더우드(H. G. Underwood) 등의 교육선교사들이 내한하여 각종 기독교계 사립학교를 설립해 나갈 수 있었다.

이렇듯 선교사들의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활동은 한국기독교의 첫 출발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복음전도, 곧 선교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기 한국선교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교육선교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공개한다. 이는 한국교회의 태동을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한국 근대문화와 민족운동사에 있어서도 그 중요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크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자료 전시회가 구성된다.

첫째,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 사용되었던 교과서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정동여학당(현 정신여고) 3대 교장을 지냈던 밀러 부인(S. A. Doty Miller)이 1905년 저술 간행한 초등 산수 교과서 “심산초학”이 전시되며 1898년 북장로교의 의료선교사로 내한,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및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던 필드(Eva Field Pieters, 필하와)가 당대 여러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코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1920년 번역․편집하여 내놓은 산술(算術) 저서 “고등산학신편”도 전시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산수․수학 교과서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감리교 목회자로 상동청년학원, YMCA, 배재학당 등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 역사와 한문을 강의했던 김진호(金鎭浩)의 1930년 한국역사 관련 저술작인 “조선사초(朝鮮史抄)”가 전시되어 초기 기독교계 사립학교의 민족주의 의식을 일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졸업앨범과 수료증서들이다. 배재학교, 경신학교, 이화여학교, 세브란스의학교, 연희전문학교, 상동청년학원 등 당대 한국교회와 교육계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의 졸업앨범과 수료증서들이 전시되어 초기 한국 교육선교의 일면을 볼 수 있다. 특히 졸업앨범의 경우 일제시대 말기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인한 총독부의 간섭으로 일본의 국가(國歌)인 기미가요(君が代), 황국신민의 서사 등이 수록되어 있어 당대 학교 운영의 어려움과 고충을 짐작해 봄으로 역사의 빛과 어두움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YMCA 등이 중심이 되어 주로 야학을 통해 전개되었던 농촌계몽 교육 관련 자료가 전시된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 민족이 겪은 급격한 사회 변동의 하나가 농촌 경제구조의 변화였다. 1910년대 이후 집요하게 추진되어 온 일제의 민족경제수탈 정책의 결과, 한국 농촌의 현실은 더욱 황폐화되다. 이와 같은 농촌현실에 대해 기독교는 나름대로 그 타개책을 모색하려 했는데, 여기에 YMCA가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 즉, YMCA는 예하에 농촌부를 두고 학교를 열어 농촌사업 지도자 강좌를 진행하였으며, 다양한 관련 교재를 발행하여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이와 관련하여 1920년대 말부터 YMCA에서 발행한 축산, 양잠, 과일 및 채소 재배에 관한 농촌계몽 관련 교재들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이는 오늘날 대내외의 여파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의 현실 속에서 초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끔 만드는 기회가 되리라 본다.

넷째, 주요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전시된다. 이는 각 지역별 교육과 선교의 흐름을 이끌던 대표적 학교들의 발자취를 재구성하여 관람객들이 한 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으로 학교의 전경과 연혁을 통해 한국 교육선교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외 기타자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913년 발행되었던 “예수교내학교 과정 및 교과용 도서일람표”를 통해 한일병합 이후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대한 일제의 간섭과 이로 인한 교육선교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선교부의 갈등과 고심을 비교하는 등 한국교회의 입장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선교부나 한국 토착교인들이 직접적으로 설립한 학교는 아니지만 설립과 그 운영에 있어 주요 인사로 참여하거나 활동했던 학교들의 관련 자료도 전시되어 초창기 기독교계 사립학교의 사회․교육적 파급과 그 영향력도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구한말․일제강점기 당시 기독교계 사립학교는 시대의 풍파 속에 수많은 내외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민족 속에 복음전달과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가지고 발걸음을 이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첫 출발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요소로 민족과 함께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복음전달과 이의 실천, 그리고 근대교육을 위한 헌신을 가슴으로 느낄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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