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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된 자폐장애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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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욱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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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화예술학교·여성플라자가 공동주최 국제장애어린이축제 열려
지적·심리적 잠재능력을 계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시간 되

“으하하, 저는 영웅이에요. 이 분홍색 가면에서 힘이 나와요. 저는 씩씩합니다!”
“어머, 우리 재한이 멋지다! 언제 이렇게 씩씩한 영웅이 된 거야?”
자폐장애를 가진 김재한군(11)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을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분홍색 가면을 쓴 김군은 “가면에서 힘이 나온다”며 슈퍼맨 포즈를 취했다.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던 김군도 이 시간만큼은 큰 목소리로 영웅선언을 했다. 김군이 영웅으로 거듭난 것은 바로 특별한 가면연극 덕분이었다.

장애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축제
지난달 8일부터 9일까지 이틀간 제8회 국제장애어린이축제 ‘극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어린이문화예술학교와 여성플라자가 공동주최한 이번 축제는 문화예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행사다. 국내 유일의 장애어린이 축제이기도 하다.
어린이문화예술학교 담당자는 “장애어린이들의 지적, 심리적 잠재능력을 계발하고 향상하기 위해 장애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문화예술프로그램 행사를 마련했다”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어 모두가 동등한 삶을 살아가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8년째 이런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을 여는 예술치료
이번 행사에서 눈여겨 볼만한 프로그램은 자폐장애어린이를 위한 ‘연극치료놀이’였다. 연극치료놀이는 자폐장애어린이들이 닫힌 마음을 여는 예술치료 프로그램이다.
자폐장애어린이들이 마음을 열어 타인을 도우며 좌절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아이들은 바다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불난 아파트의 불씨를 끄는 등 가상 미션을 수행하고 성취감을 얻은 뒤 스스로를 당당하게 영웅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감을 가진다. 장애복지시설 및 특수학교 장애어린이 및 청소년 30여명이 직접 연극 만들기에 나섰다.
어린이문화예술학교 이현숙 교사는 “보통 자폐장애어린이들은 자신감이 부족해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자폐장애어린이들이 누군가를 돕고 협동하며 영웅이 돼 ‘난 아무것도 못 해’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게 하고자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자폐장애어린이들이 좌절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얻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교사는 가면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 교사는 “자폐장애어린이의 경우 자기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그 결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가면을 활용한 영웅놀이 연극치료놀이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무대 막이 오르자 자폐장애어린이들은 바다에 빠진 친구를 구하라는 첫 번째 미션을 받았다. 아이들은 파란색 비닐로 표현한 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인형을 찾아와야했다.
잠시 후, “내가 구했다”며 환호하는 자폐장애어린이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파란색 비닐을 바다로 상상하며 놀이에 참여하는 것은 상상능력을 배우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후 자폐장애어린이들은 불이 난 아파트의 불씨를 끄는 두 번째 미션을 수행했다. 아파트 모형에 붙은 불씨 모양의 그림들을 떼어내는 식이었다. 불씨를 한 번에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자로 줄을 서 차례로 하나씩 옆의 친구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영웅이 된 자폐장애 어린이들
연극치료놀이의 하이라이트는 가면을 만들어 쓰고 영웅으로서 인터뷰하는 미션이었다. 세 가지 미션을 모두 수행한 뒤 영웅 자격을 획득한 자폐장애어린이들은 마지막으로 가면을 쓰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자폐장애어린이들은 저마다 원하는 소망을 담아 크레파스로 가면을 색칠했다. 아이 가운데에는 고양이처럼 귀여워지고 싶다며 가면에 분홍색 고양이를 그린 아이도 있었고, 가면에 커다란 눈을 그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소망을 담아낸 아이도 있었다.
이 교사가 리포터로 변신해 “용감한 영웅부터 차례로 나와달라”고 말하자 영웅이 된 자폐 장애어린이들은 차례로 포토존에 올라섰다.
자신을 ‘정준혁 영웅’이라고 소개한 정군은 지금 기분을 묻는 리포터의 말에 “굳”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키가 작은 한 어린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나와 활짝 웃기도 했다.
30여명의 영웅들이 포토존에 올라선 후, 이 교사는 1시간 동안 영웅이 되기 위해 수행했던 미션을 되새겨줬다.
“여러분, 영웅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지금까지 멋지게 성장한 여러분의 모습을 다시 확인했는데요. 이젠 세상을 구하러 떠날 차례랍니다. 세상에 나가면 어려운 친구들을 꼭 도와주세요. 먼저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 되어주세요!”

자폐장애어린이도 할 수 있어요
행사에 참여한 고지희양(13)은 “나는 빨간색 레이저가 나오는 가면을 쓴 영웅”이라며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불도 끄고 멋진 가면까지 쓰니까 정말 영웅이 된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일반적으로 자폐장애어린이는 연극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이들에게도 상상하는 능력이 있다”며 “상상력이 있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어 “자폐장애어린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응원하는 분이 더욱 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폐장애어린이들은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연극을 완성했다. 자폐장애어린이들의 말처럼 가면에 깃든 빨강 노랑 에너지 덕분이었을까. 아이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어린이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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