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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꿈은 운명과 패배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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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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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의 삶에서 승객이 되고 싶지 않다.
-다이엔 에커먼-

후기 대학의 침체된 절망의 끝에 큰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성경공부는 다시 나를 붙잡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창세기에서 배운 것 ‘사람은 우연으로 생긴 존재가 아니고 목적이 있는 필연적인 존재로,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사명인으로 살아야한다’라는 말씀이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정고시를 공부하였다. 당시 목사님이 하신“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부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고시에 재도전하라”라는 말씀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에 다시 응시했고, 합격자 발표 중앙청 게시판에 ‘수험번호 10344번 송하성’내 이름이 있었다. 나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지금까지 나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운명주의와 패배주의의 사탄을 믿음으로 깨뜨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79년 5월6일 박정희 대통령 명의의 행정사무관 임명장을 받고 1년동안 수습을 하게되었다. 1년이 지나야 수습 점수까지 합해 성적서열을 매긴 후 지망하는 부처에 따라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잘라서 발령은 낸다. 수습b중 나의 성적을 알게b되었는데, 합격자 중 꼴등으로부터 세어 아홉 번째였다. 사실 이 점수와 석차면 내가 가려고 기도하는 경제기획원과를 거리가 멀었다. 나는 기도했다. 진심과 열정으로 주께 매달렸다. 나의 꿈 가까이 가려면 경제기획원에 가야겠으니 꼭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겠다고 도전한건이다. 그런데 기도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총무처에 인사모임을 총괄하던 김대흔과장이 점심을 하자고 나를 초청한것이다. 김과장은 고위직 공무원인사를 총괄하니 매우 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걱정했다. ‘고시성적이 꼴등 근방이서서 잘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다음날 식사를 같이 하였는데, 그는 여러 번 뜸을 들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김과장 자신의 여식이 지금 총무처에서 근무하고 있다 했다. 아마 송하성 사무관이 수습 근무하는 과에서 송 사무관을 보조하고 있는 모양인데 송 사무관이 같은 고향 형인 은행대리 송 누군가를 소개해주어 만나고 있다고 하더군“ 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랬다. 그때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만나 교제를 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에 김과장은 고양 형인 그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첫눈에 잘생기고 똑똑해 보이는 형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 두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김과장은 나를 형과 가까운 친척인줄 알고 나를 사돈이라고 불렀다.

나의 발령 날짜가 다가왔다. 김 과장은 나를 불러서 어디로 가고 싶은가? 물었다. 나는 경제기획원으로 가고 싶다고 답했다.
턱도 없는 소리라고,,,내가 배려해서 서울시청으로 발령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는데 어떤가? 사실 서울시청도 어느 정도 성적이 좋아야 가는 곳이었지만, 나는 거기는 안가렵니다. 내년에 고시 한번 더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김과장은 자신이 고심해서 힘써주려고 말한 것이 거절당하자 매우 섭섭한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체신부 전무국 사업관리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 근무하지는 않았다. 두달 정도 대기하고 있다가 경제기획원으로 전보발령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려운 일이었으나 꿈과 꿈에 대한 열정이 있는 나에게 하나님도 눈길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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