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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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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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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앤 랜더스-

병장 제대 후 다시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복직한 나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투자계획과에 근무하던 시절, 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무 입안자로서 국가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그 중 광양 컨테이너 항구 건설을 비롯해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충 계획을 입안하고 관련 계획이 예산에 반영되도록 일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이제는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앙고속도로의 명칭은 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전 내가 직접 작명을 했고 경부고속전철 연구용역을 최초로 실시했다. 그리고 교통개발연구원이라는 정부연구기관을 발족시켰다.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교통관련 용역으로 1983년 당시 한해 63억원이 외국으로 지출되었는데 그 비용이면 우리 인력을 써서 교통관련 연구소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맡은 바 업무에 전력했다. 사무실에서 자정을 넘기는 것을 예사였고, 사무실의 긴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이며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동기생 중 가장 먼저 과장으로 승진했다. 과장 승진 후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에 파견되어 해외유치부장, 홍보부장으로 일했다. 이후 청와대 경제비서실과장, 경제기획원 공보 담당관, 공정위 과장 등 경제 정책을 다루는 정부 내 주요 요직을 거쳤고 틈틈이 후배들을 위해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경제정책론, 경제원론, 공기업론 등을 가르치는 일도했다. 1992년 동력자원부 장관이었던 전 념 부총리가 나의 부친 회갑기념문집 ‘고흥의 흙과 더불어’에 써 준글에 당시 나의 모습을 읽을 수 있기게 그대로 옮겨본다.

나는 청헌 송병수 선생을 잘 모르나 송하성 군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1980년대 초 경제기획원 차관보로 있을 때 송하성 과장은 차관보산하 투자계획과에 사무관으로 근무했었다. 같이 일한지 얼마 안되어 그의 남다른 점이 쉽게 발견되었다. 그는 실력과 소신을 겸한 자로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과 열성으로 일했다. 무슨 일을 저녁에 지시하면 다음 날 아침에 보고서가 되어 올아오곤 했다. 그가 일을 시작하면 사무실에서 밤새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는 곧 사실로 판명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영등포 당산동 유통센터와 관련한 일이다. 당시 수도권 기능 분산대책의 일환으로 서울 중심지역의 기능을 변두리 또는 위성도시로 분산시키자는 것이 정책 방향이었다. 이 대책을 등에 업고 어느 한업자가 유통센터를 짓는다는 계획하에 영등포 당산동에 땅을 계약해 놓고 청계천 상가의 업주들을 설득하여 그곳으로 옮기려 했다.
얼핏보기에 이는 대의명분이 있는 필요한 일이었으나 매우 큰 이권 사업이기도 했다. 1983년 당시 유통센터는 땅값을 포함, 500억원 규모였는데 이를 지으려면 국무총리가 위원장이고 부총리와 건설부장관이 부위원장인 수도권 정비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만 했었다.
건설부, 교통부, 서울시 등 특별히 반대하는 부서가 없었다.
그런데 경제기획원에서만 반대했다. 이 반대의 주범은 송하성이었다. 그의 논리는 이미 영등포는 변두리가 아니라 도심과 다름없는 지역이어서 이곳에 유통센터를 지으연 C/V(교통량/교통용량)가 0.8이 넘어서 도시차량정체현상이 나타난다는 이론이었다. 차량정체현상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는데 시간 손실은 계산하지 않더라도 1979년도 가격으로 연 520억원으로 소요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통센터 이전으로 인한 땅값 상승 등으로 개인은 많은 동은 벌지만, 영등포 및 수도권 정체현상을 가져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송하성과장은 온갖 회유와 로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0페이지 보고서를 만들어 나를 설득했고 신병현 부총리까지 결재를 받아 반대의견을 밀어붙였다.
결국, 수도권 정비심의위원회에서 신병현 부총리가 송 과장이 쓴 반대의견 보고서를 한 자도 빼지 않고 읽고나서 반대의견을 제시하여 이 안은 단번에 통과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1985년 프랑스로 떠날 때 일하던 과에서 만들어준 기념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국경제를 생각하며 불타는 정열과 냉철한 논리로 황소같이 일하던 송 사무관을 보내며’ 또한 과장 승진 기념패에는 ‘불가능을 가능케한 정열적인 당신’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송 과장 세대야말로 움트는 21세기를 준비하는 세대이며 그는 그 선두주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전 념 전 경제부총리(1991.12 당시 동력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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