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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 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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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것을 성취하려먼 행동할 뿐 아니라
꿈을 꿔야하며 계획할 뿐 아니라 믿어야 한다.
-아나톨 프랜스-


나의 과장 승진 기념패에 쓰여 있던 문구대로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에서도 그러했지만, 학문을 하는데서도 더욱 악착같았다.
형편없던 불어실력에도 불구하고 파리1대학인 소르본느 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경제학 박사과정의 시작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이렇듯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을 일들이 나에겐 많았지만, 그저 해프닝으로 넘겨 버리기엔 초조함과 갈등은 너무 컸다. 불가능하다 라는 평가에 주눅이 들어 포기하였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학 박사과정이후 박사 예비코스(DEA)의 예비논문에서 수석으로 통과했고 내 교수는 나를 “몬 아미”라고 부르며 예수하여 주었다. 그 이후 프랑스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어이 없게도 불가능을 가능케한 ‘전설적인 사람’으로 입에 오르내렸다.
박사 학위를 얻어 귀국하고 나서 공직생활뿐 아니라, 송하성 교수님!이란 호칭을 들으며 강의를 했다. 경제실무자들에게 현실적인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학생들은 귀담아 들었다. 특히, 어느 강의에서도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1989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경제학 원론을 강의하면서부터 그때 제자들은 ‘이수회’를 조직해 당시 내 강의의 모습을 담은 글을 소개한다.

송 교수님과 함께했던 ‘경제학 원론’강의
우리의 ‘경제학 원론’수업은 다년간 경제기획원에서 직접 경제정책 수립을 하고, 그 후 수립된 정책에 대한 경제효과 및 결과에 대한 추이를 직접 반복 경험하시고 계셨던 송하성 교수님에 의하여 뜻밖에 재미있고 쉽게 설명되는 강의였다. 여기서 내가 ‘의외’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 상디 어느 중견업체 이사로 계시며 경제학과 4학기에 몸담고 있던 한 선배께서 하신 말씀 때문이다. 그 선배는 여러 교수로부터 몇 학기의 경제학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그 강듸들이 자신이 첨음에 기대했던 바와 달리 경제학 원론에 대비한 당시 경제 흐름과 경제현상 분석 등과 같은 현장경험에 기초한 강의가 부족하여 아쉬웠다고 했다.
송교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주변의 기업환경에 대한 이야기 등 당시의 이슈를 기존 이론에 대비시키는 등 가능한 쉬운 이론 설명으로 더욱 실제적 적용사례를 들어주셨다.
실물경제 전문인답게 ‘우리나라 경제의 실태-현주소’란 제목으로 1960년대부터 1989년 당시까지의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통 점검해주신 장의는 후에 반 동료끼리의 모임에선 각자의 의견까지 덧붙여서 오랜 토론 주세로 발전하기도 했었다. 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정기적인 모임을 하며 송교수님께서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 모임의 특별회원으로 가끔 참석하여 교실 밖에서의 경제학 강의를 계속 해주시고 있다(1989.9 백향순 연세대학교 경역학 석사 52기)

연세대에서 비롯된 강의는 나의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 등에서 계속되었고 나는 차츰 교수라는 칭호에도 익숙해졌다. 강의를 하려면 많은 공부와 준비를 해야 했다. 학술지에 영어논문 2편, 한국어 논문 6편을 발표하고 ‘미국 경쟁법 가이드’등의 전문서적을 펴내는 등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자가 아닌 공무원으로서 공무와 연구를 상호 보완되었을 뿐 아니라 현실경제를 이끌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란 생각에 더욱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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