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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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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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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외치는 지도자들 가운데는 무슨 병이든 다 고친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그리고 그 화려한 경력과 함께 치유 받은 사람들의 간증집이 항상 등장한다. 문제는 그러한 행위가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예전 부흥집회에서 보았던 즉각적 감정의 동요로 간증하고 간증문을 써내려간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이단이라고 규정한 H기도원 K전도사나 S교회의 K목사가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방송국에서 이단의 그러한 치유행위의 허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고침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병력과 시간의 경과에 따른 효과가 정말 있었는지 정밀 추적 보도하곤 하였고 많은 수가 병이 재발하거나 아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도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고침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현상을 규정하는데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현상을 잘 드러내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신치료의 역사에서도 개인치료를 아무리 해도 가정으로 보내지면 다시 재발하는 환자를 보고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가족치료이론이 발전되게 된다. 이를 더 확대해서 오늘날은 개인을 병들게 하는 사회시스템의 병리현상까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우리의 치유형태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의 영적인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피 치료자에게는 그런 자신에 대한 신앙적 지각의 각성이 중요하겠지만 치유자가 그렇게 일개인의 문제로 몰아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가난이 전부 개인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병들고 육신이 아프게 되는 것이 전부 개인의 영적 문제이겠는가? 또한 모든 치유자 자신의 치유행위 속에 치유 받지 못한 사람은 없는가?라고 묻고 싶다. 그 치유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의 문제인가?
어느 인생치고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그 상처는 치유의 문제인가? 극복의 문제인가? 치유를 뛰어넘어 삶의 의욕을 제공하고 자신과 주변을 바꿀 수 있는 신앙적 에너지가 부과적으로 따르지 않는다면 치유중독자가 되어 언제나 인도자가 암시하면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게 되고 더욱 나약한 개인이 되어 가곤 하지 않는가?
더욱 문제는 그런 치유경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치유자를 대단한 능력자로 인식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존적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치유자가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자신이 고친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서 사례집을 만들었다고는 듣지 못했다. 단지 임상적 사례를 학술적으로 인용할 뿐이다. 그러나 왜 비단 기독교내에서 이러한 사례집이 난무하는가?
치유는 모든 가정에서 꽃을 피워야 하고 모든 교회 공동체에서 항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치유고 계속적인 재발을 방지하는 길이다. 일상에서 사랑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항상 특별한 프로그램을 찾게 되고 이는 중독성을 갖게 된다. 그 중독성은 우리의 생활인 교회와 가정에서의 안식과 치유적 기능을 부정하게 된다. 모든 치유자가 그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모든 프로그램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심리치료적 방식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심리치료적 방식을 신앙적인 겉포장만 입힌채 아무렇게나 포장하여 사용하는 것을 볼 때 위태롭기 그지없다.
치유자는 자신의 지식이나 방법론에 대한 회의를 가져야만 한다. 자신의 프로그램이나 집회를 통해서 고침 받았다고 희색이 만연한 많은 사람들이 아닌 아무말없이 씁쓸하게 돌아서는 한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그 발걸음 속에 감추어진 속마음을 염두에 두고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알량한 기도로 “주님께 그들을 맏깁니다”라는 식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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