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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사람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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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흥식 관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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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월간지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한 설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는 절반 정도의 사람들의 이유를 보니 하느님이 싫어서도 아니었고,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나쁜 것을 가르쳐서 혹은 예수님의 주장이 잘못되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싫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싫어해서 기독교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희망을 놓지 않게 됩니다.

어느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고 노래하면서 사람의 역할에 따라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필자는 "기독교인만이 문제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기독교인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의 영광, 존귀성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하느님 전에 오려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사탄의 짓거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에게 요구하는 삶은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의 어떤 모습이 싫어서 하느님을 믿으려는 마음까지 앗아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가 한용운 선생님이 전국의 주지 스님들을 모아 놓고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용운 선생이 스님들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똥보다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대답이 없자 한용운 선생이 답을 합니다. “시체 썩는 냄새다. 그러면 시체 썩는 냄새보다 더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또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한용운 선생이 그 주지들을 향하여 이렇게 일갈합니다. “이것들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중놈의 마음보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심에서 예수가 사라지면 우리 마음은 똥이나 썩은 시체보다 더 더러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은 세상의 중심에 서는 일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중심은 어디라고 봅니까? 먼저 우리 몸의 중심을 물으면 사람들의 대부분 마음, 가슴이라고 말하나, 구체적인 우리 몸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입니다. 우리들은 작게나마 손톱 끝이라도 상처가 있어 아프면 그것만 신경 쓰게 됩니다. 가장 신경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 몸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이 됩니다.

그렇다면 같은 의미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중심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서울인가요? 명동이요. 인천이라면 송도 신도시인가요? 둘 다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도 어느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아픔을 지닌 채 살아있는 사람들의 현장입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한 사람들, 정신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곳. 구체적으로 주변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들이 바로 이 세상의 중심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음으로 이 세상의 중심에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그리하여 그들과 진정으로 사귄다면 하느님의 진가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저절로 증가할 것입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을 싫어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자격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은 하느님께만 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삶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존귀성을 드높이는 신앙생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인천남구장애인복지관 조흥식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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