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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물러갈지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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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태화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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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무서웠던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참고로 1960년대 이야기다.) 밤에 ‘변소’라도 갈라치면 바람에 나부끼는 형체들이 참 무서웠다. 농촌 출신임에도 밤에는 모든 게 으시시했다. 시골 마을에 풍미하던 처녀귀신 몽달귀신 바가지귀신 등등의 민담 이야기가 밤의 상상력을 부정적으로 키웠던 것이다. 또 하나 사연이 있다면 무서운 아저씨들 때문이었다. 마을에 잔치나 초상이 벌어지면 몇 명의 아저씨들이 반드시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지팽이를 집고 절뚝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손이 없거나 쇠갈고리 같은 것을 달고 있었다. 의족이니 의수니 하는 명칭을 알지 못하던 나이에 내 눈에는 그저 놀라움이나 무서운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 아저씨들은 대문 밖에서 식사나 막걸리를 마셨는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가끔 시비가 붙곤 했다. 지금도 기억에 울리는 말, “우리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뚱이까지 다 바쳤는데, 우리를 거렁뱅이 취급을 하냔 말이다!”

육이오 전쟁 후에 태어난 나는 사실 이 전쟁의 참혹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성장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우리 군인들이 부상이나 고엽제 등으로 고통 당할 때, 그때도 나는 실제로 그들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었다. 전쟁에서 육신의 부상을 입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상이군인의 삶을 평화시대를 갈구하던 후손들이 어찌 가름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 분들의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누가 치유하고 보상해주겠는가. 더구나 사회가 상이군인들의 상처와 노고를 기억하지 못할 때, 그 현실을 무관심하게 내버려둘 때 과연 누구를 위해 몸 바쳐 종을 울렸는가, 회한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바친 분들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 묵념해 본다. 대한민국은 조국을 위해 피 흘리고 몸바친 분들 때문에 평화와 안녕을 누리고 있다. 여기서 이론(異論)과 분열이 있을 수 없고 이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저버릴 수 없다. 혹여 이 분들의 마음이 섭섭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이며, 후대 국민들의 배은망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국가와 국민에 대하여 원한 감정까지 가게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 국가가 평화를 누리는 데는 그만한 희생이 전제되어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기독교계는 어느 누구보다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명예로운 대우를 받아 불편한 몸이지만 당당한 생활을 누리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분들은 이웃사랑의 개념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이미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 사랑”을 실행하신 분들이 아니던가. 이 분들은 우리의 은인이기에 은혜를 잊는 배은망덕은 다시 있어선 안될 것이다. 유월 보훈의 달에는 이 분들께 더욱 감사하고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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