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정

문화이야기 분류

문화이야기 | 칼빈, 그의 500년

작성자 정보

  • 추태화 교수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추태화 교수 올해가 칼빈 탄생 500주년이어서 기독교 세계가 기념세미나와 신앙 강연 등으로 분주하다. 칼빈이 태어난 날은 1509년 7월 10일이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기치가 칼빈의 프랑스로 전해진 때 그는 불과 8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칼빈은 22살 되던 때 법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떠난다. 당시 유행하던 인문주의를 알게 되고, 곧 이어 종교개혁 정신 특히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에 감명을 받는다. 구교가 종교개혁을 탄압하자 칼빈은 망명길에 오른다. 그는 이미 종교개혁을 받아들여 신교의 자유가 보장된 바젤로 도피한다. 그는 목적지는 슈트라스부르크였다.

하나님께서 바울사도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게하신 것처럼 칼빈도 자신이 뜻하지 않은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제네바였다. 제네바 성시화(聖市化) 운동이 벌어진 것은 그런 연유였다. 칼빈의 신앙운동을 두고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신앙의 이름으로 독재를 감행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의 의도는 달랐다. 독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 내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었고, 자본주의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개혁과정에서 칼빈은 종종 대적자들과 목숨을 내건 힘겨루기에 내몰리기도 하였다. 당시 개혁은 일종의 전쟁과 유사했다.

칼빈은 제네바시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흘러나오는 사회 공의와 정의로 변하게 하였다. 진지하고도 치열한 개혁을 진행하던 중 1564년 5월 27일 지상의 삶을 마친다. 55세였다. 칼빈의 500년은 성숙해야한다. 칼빈주의라는 이름의 교조주의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외식을 벗어버리고 복음의 자유함을 누리게 해야 한다. 그것이 칼빈의 500년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칼빈의 이름으로 또 다른 껍데기를 만들어내지 말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의 진품(眞品)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