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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 | 음악은 내 인생이며 내 귀한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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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라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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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인천시립합창단, 인천남성합창단, 인천장로성가단 지휘

고희 될 때까지 지휘자 자리 굳건히 지키며 하나님 사명 감당

 

윤영진 장로(장로성가단·제삼교회 지휘)는 인천에 새로운 음악의 길을 열어 알린 음악의 전도사이며 인천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음악인이다. 윤 장로는 올해로 고희를 맞는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지휘자의 자리에 굳게 서서 자신이 맡은 직분을 충실히 잘 감당해 내고 있다. 올해 그의 고희를 기념하여 250여명의 제자들과 그와 음악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아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하였다. 오는 10일 하늘꿈교회에서 윤영진 장로 고희년을 기념하는 연주회가 펼쳐진다.

윤 장로는 “여러 곳에서 이렇게 연합해서 나를 기념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일인지 몰라요”라며 밝은 미소를 뗬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하모니카를 잘 불어 행사가 있으면 나가서 연주도 하고 했었다.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부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작곡을 하면서 음악의 열정을 나타냈지만 독학으로 한 것이라고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아 적잖은 마음의 상처도 입었었다. 그런 그에게 고 3때는 최영섭 선생님(당시 인천여상)을 만나면서 또 대학을 가서는 경희대 음악대학 작곡과 김동진 선생님한테 음악을 배우면서 그 안에 감춰져있던 음악적 재능을 하나하나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지휘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 당시 인천에 있는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호산나 합창단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성가대 지휘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활동을 해나갔다.

윤 장로는 30대에 접어들면서 도전정신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타내면서 인천의 음악인으로 길이 남을 업적들을 펼치게 된다.

그는 처음에 인천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뜻을 모아 인천시합창단을 설립해 무보수로 인천에 음악을 전하는 자의 역할을 해나갔다. 그렇게 2년을 마음으로 헌신한 후에 인천시립합창단 초대 상임지휘자로 전격 발탁이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떨치며 그 후에 인천남성합창단을 조직해 20년 동안 맡아 같이 활동을 했다.

또 30대 후반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장로성가단인 인천장로성가단 지휘를 맡으면서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인천장로성가단은 인천을 비롯해 전국에 있는 교회와 해외에 있는 교회를 다니며 연주를 했고 정기연주, 해외초청연주, 조찬기도회, 종교사회단체에 초청받아 아름다운 찬양의 향기를 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쓰임을 받고 있다. 인천장로성가단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교회 연합 운동에 앞장서기를 염원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주의 종들이 조직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화합과 단결이 잘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장로성가단에서 33년 동안 지휘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윤 장로는 “내가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든 것도 모르고 이때까지 달려왔어요”라고 말했다.
33년 동안 하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한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귀한 자리를 6개월 정도 내려놓았었다. 1992년도에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몸의 거동이 불편해 그 자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함께 했던 성가단원들도 그의 빈자리는 컸다고 한다. 함께 인천장로성가단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장로는 윤 장로가 없는 동안 화합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며 잠시 맡아주었던 지휘자가 장로들을 연합하는데 부족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윤 장로는 사람들은 어우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성격도 터프해 남성성가단을 지금까지 잘 이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윤 장로는 그 날을 회상하며 “좀 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 하시려고 그러신 거 같아요”라며 “장로성가단을 위해 더 헌신적으로 봉사해야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커다란 계기가 되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장로성가단과 교회성가대의 지휘를 하라고 다시 건강을 허락하신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음악만을 생각하며 한 평생을 살아왔다. 그의 머릿속에는 늘 음악이 떠나지 않고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71년 박순종 목사가 작사한 것을 받고 수십 번 읽고 또 읽고 그 내용 안에서 영감을 얻어 ‘승리의 부활’이라는 찬양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번 고희를 기념해서 감사로 드리는 예배도 ‘승리의 부활’로 펼쳐진다. 윤 장로는 “이제 나이가 70세가 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 사업에 열중하는 것 뿐이에요”라며 몸이 허락하는 한까지는 지휘자로 음악인의 삶을 살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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