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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 화해 그리고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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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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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희 사무총장부천YWCA 내 생의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이 언제가 되더라도 그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 앞에선 항상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그 끝은 아름다울 것이다. 10대 청소년들 100명에게 질문했다. “가출의 경험은 없으나 가출하려고 한 적이 있다”가 거의 80%를 차지하고 “자살의 충동을 경험했다” 역시 59%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전에는 자살의 이유가 있었는데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는 이유가 그리고 목적이 없다. “그냥이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상담 활동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주말 경찰서에서 급히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았더니 두 학생이 통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방화범이 됐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너희들 많이 힘들었나보구나. 그런데 왜 불을 내고 싶었어?”라는 질문에 “그냥이요”라고 간단히 답하고 말문을 막았다. 이야기인즉 학교가 일찍 끝나 약간의 시간 여유를 갖고 어디 갈 곳이 있나 찾아보니 공원은 너무 멀고 영화는 돈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많아 포기하고 그냥 걸었다고 했다. 그런데 옆에 너무 멋진 잔디밭이 펼쳐있어 그곳에 가자고 서로 의기투합하여 들어가려 보니 긴 줄이 쳐있고 거기도 역시 들어갈 수가 없는 장소였음을 알고는 실망스런 마음으로 다시 걷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무엇이 잡혔다. 바로 라이터였다. 순간 그 잔디를 태워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그 아이들은 재빠르게 동작을 취했다. 순식간으로 번져 타들어가는 잔디밭을 보고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고는 갑자기 두려워져 마구 뛰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잘못했다는 죄책감 보다는 오히려 무언가 후련함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 노파심에 착착함과 서글픔이 교차되는 그런 날의 경험이었다.

우리 곁을 떠나는 사람들, 이유 없이 사건을 만드는 아이들, 그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기 앞서 자꾸만 황폐해져 가는 우리의 정서가 아쉽고 염려스럽기까지 한다. 중·고등학교의 교과과목이 입시와 경쟁을 위한 과목으로 편중되어 점점 아이들이 경쟁사회에서 이겨 나가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으로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참으로 그리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 가슴을 열고 선선한 바람 속에 찾아들 평온함을 맛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소망들을 기대하며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 우린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아파하기도 했고 세상을 향해 외쳐보기도 했고 때로는 침묵하며 바라보기도 했다. 잘 살기위해 노력하고 기도하기 보다는 잘 죽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잘 죽는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가 아닌 즉, 어떻게 살다가 갔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대결적이고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협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로 끌어가기 위한 화해의 힘 이것이 바로 “평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잘 죽기 위한 삶은 나와 너 나와 우리의 화해의 손길로 이루어 낸 평화, 즉, 새로운 인간관계를 모색해나가는 삶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화해의 뜻은 “함께 모인다. 함께 동행한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면 나 자신과의 내적 갈등을 영적으로 화해하는 자신과의 화해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나누고 나의 이웃인 그들과의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은 곧 평화를 이루게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닐까? 이러한 새로운 삶의 변화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내 이웃을 떠나보내지 않는 이 계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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