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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교수의 문화칼럼 - 호국보훈의 달 6월에 더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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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대한민국!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고 산화하신 호국영령께 깊은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바칩니다. 또한 구국의 일념으로 몸이 찢기고 상하신 모든 호국의 선배님들과 그 가족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와 동지애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역사를 잊은 백성은 미래가 없다 하였는데, 지금 여기에 살아남은 우리는 선열께서 지켜내신 고귀한 역사를 기억하며 그 뜻과 유지를 받들어 사랑과 공의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계속 만들어 나가기를 맹세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모두를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련한 유치한 추억의 고백

 이제는 잊어도 될만한 유치한 추억이 이 시기가 되면 의례히 떠오른다. 정말 오래되고, 정말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고해성사 하는 마음으로 고백해 본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당시 알고 지내던 옆 학교 여학생과 수원 딸기밭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다. 수원 딸기밭은 지금은 고층 아파트촌이 되었지만 그때는 제법 유명한 유원지 같은 명성을 풍겼다. 콧대 높은 여학생(나는 왕 콧대라 불렀다)의 응락을 받은 터라 얼마나 설레고 흥분되던지 밤잠을 설쳤다. 아무 일도 집중하지 못했다. 들뜬 생각에 며칠이 지났다. 갑자기 소풍날이 66일이라는 게 떠올랐다. 현충일이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현충일은 공휴일이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 둘만의 소풍이 아니고, 그 학생이 친구 커플을 초대한 것이었다. 나는 현충일이라 놀러가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의 새가슴이었다. 더구나 다른 학생들 앞에서 쩨쩨해 보이는 행동을 하기 싫었다. 우리 네 명은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나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대단한 애국청년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충일에 딸기밭 데이트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대화는 하하호호 재밌게 흘러갔다. 그러자 문득 여학생이 묻는다. “너네 학교는 서울대 몇 명 보내니?” 나는 자신 있는 목청으로 작년 선배들은 칠십 명 정도, 그 전에는 좀 더 많이 들어갔다네.” 여학생이 바로 대꾸했다. “에게 칠십 명이 뭐니. 예네 학교는 백 명 훨씬 넘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왕콧대 여학생이 말한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니. 본인 성적이 중요하지.” 왕콧대 여학생은 분명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의 친구가 다니는 학교가 서울대 입학을 더 많이 못시킨다는 게 뭔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비교의식이 사람을 잡는다. 그때부터 분위기는 완전히 냉랭해졌다. 모두 머쓱해져서 어떻게 이 난관을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일촉즉발의 격전 돌입이었다. 미소(美蘇) 냉전의 축소판이랄까. 수원 딸기밭 소풍은 그렇게 시작부터 냉전에 냉전을 거듭했고, 우리는 딸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어느 시점에서 집에 가자며 귀가를 서둘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여학생의 콧대가 상처를 입은 거였다. 그날 늦은 오후 서울에 돌아온 우리는 별로 말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나는 다짐했다. 역시 현충일에는 놀러 다니면 안 된다는 것, 현충일에는 순국선열을 추모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 매해 현충일이면 이 추억과 함께 현충일은 경건히가 나의 인생지침이 되었다.

 그 후 성경공부 시간에 배운 말씀이 내 경험을 새롭게 하였다. 구약의 절기와 안식일에 관한 구절이었다. 특히 이사야 5813절이 강력하게 도전을 주었다. “안식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을 배운 뒤로 나에게 현충일은 이렇게 자리잡았다. “맘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는경건한 절기의 하나로 살아가게 되었다.

 

 시험에 잘 나오는 시?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현충일 관련하여 여기저기 살펴보니, 이육사의 <청포도>, <광야>, <절정>, 윤동주의 <십자가>, 심훈의 <그 날이 오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김수영의 <> 등 여러 시들이 보인다. 모두들 그립고 가슴 절절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소제목이 의아하다. “시험에 잘 나오는 시”. 이 표현을 어찌 해석하랴. 시험에 잘 나오기 때문에 이 시들을 공부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 현실을 온몸으로 써내려 갔기에 공부해야 하는지. 어느 것이 먼저인가학창시절을 지나온 우리들은 모두 인정한다. 이 시들은 이육사, 윤동주 처럼 온몸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 의해 쓰여 졌고, 심훈처럼 민족 계몽과 교육에 몸을 바친 선열, 신동엽, 김수영 같은 시인들은 민주화를 위해 절규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 이 시들은 그러므로 시험에 잘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육탄으로 불의에 항거하며 육탄으로 정의를 위해 돌진한 의사요 열사들이었기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들은 모두 시대의 증언이며 역사의 기록이기에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혼신을 바친 희생 위에 세워진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한국 기독교 역사와 순교

 기독교는 역사의 종교다. 구약, 신약의 모든 내용이 역사적 기록이다. 그 중에서 절기는 신앙 역사를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하신 큰 일을 기억하며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계기가 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126:3).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큰 일을 행하시는 가운데 사람을 사용하셨다. 택하신 이들이다. 이들 중 전적으로 목숨을 바친 분들이 많다. 순교자(Martyr)이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다.”는 증언이 곧 기독교의 역사이다. 예수님 자신도 생명을 주셨고, 그 이전의 선지자, 그 이후의 사도 및 성도들도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바울 사도의 고백이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우리나라에 현충일이 있다면 한국 기독교사에는 순교와 관련한 어떤 기념일이 있는가? 현충일에 대응하는 그런 절기가 있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도 절기로 정착되지 못했다. 기념일조차 제대로 수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순교하신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12:1)이 계신데도 말이다.

가톨릭은 구한말까지 조정의 탄압을 받으며 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역사의 증언에 의하여 103위 순교성인, 124위 순교복자가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는 더 많은 이들이 순교의 길을 갔다고 본다. 가톨릭은 전국에 순교성지를 보존하여 순교자 추모, 순교신앙 현양, 신앙과 기독교 역사 교육, 신앙 체험과 피정(묵상과 힐링) 등 유익하게 활용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구한말 선교초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 육이오 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시 수많은 순교의 희생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에는 선교 중 목숨을 잃은 외국인 선교사분들과 그 가족, 특히 풍토병에 희생된 어린 아이들도 잠들어 있다. 방문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지만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바친 분들을 생각하며 믿음을 다시 추스리게 된다. 평양 대동강 가에서 순교하신 토마스 목사님, 아펜젤러 목사님은 선교여행을 가던 중 배가 침몰하는 사고를 당하여 생명을 바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신앙 선배들이 순교의 길에 들어섰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신앙을 지키신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들(화성 제암리 교회 성도들), 독립운동 하시던 중 목숨을 바치신 신앙의 선배들 (윤동주, 유관순, 이승훈 등등), 육이오 전쟁 때 북한 공산군 위협에 목숨으로 신앙을 지키신 손양원 목사님(손동인, 동신 형제)과 같은 분들(조만식, 문준경 전도사님 등등), 납북당하신 수많은 목사님, 성도님들 등등 한국 기독교사에 순교는 명백하게 증언되고 있다. (지금 글 쓰는 중, 기억에 의존하므로 이 정도 밖에 표현 못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초교파적 순교기념절기를 기대하며

 현충일을 맞아 대한민국 중앙 정부를 위시하여 곳곳에서 순국선열을 공식적으로 기리게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현충일에 사사로이 행하지 않고 경건하게 추모하며 지내는 일은 당연하다. 나아가 기독교인으로서 순교하신 믿음의 선배를 추모하고자 하는 마음도 든다. 이 기회에 제안하고자 한다면, 초교파적인 기독교 순교기념절기가 정립되었으면 한다.

한국 기독교는 각 교단별로 나뉘어져 있고, 이에 교회 절기도 교리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지켜진다. 적어도 개신교 내에서 순교에 대한 정신을 새롭게 정립하고 순교자와 순교지, 관계되는 역사 자료, 유적, 유물을 정리하는 작업도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겠다. 순교역사를 통하여 나뉘어진 한국 기독교교단들이 마음을 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는 분명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확대되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미 설립된 순교기념관 등을 연계하여 전국 순교순례길을 조성해 보는 것은 어떨지. 현재 <인천순례길>은 책자도 나와 있고, 전국에서 순례탐방자들이 방문하여 귀한 신앙의 교훈과 도전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코로나19로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 가운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베푸시는 은혜이며 믿음이다. 이를 깨닫는 가운데 맞이하는 현충일, 조국의 선열을 추모하며 또한 기독교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순교자님들을 다시금 기억하며 살아있는 복음의 정신을 가다듬게 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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