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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종말의 시대, 권태와 막장 사이에서 길 잃다? - 거룩한 교회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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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장의 도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막장이 일상 생활 속에서 활개치고 있다. 막장이라면 인적 드문 깊은 산속, 갱도 밑바닥에 목숨을 걸어가며 광석을 캐느라 목숨 걸고 일하는 리얼한 모습이 떠오른다. 막장은 본래 막다른 갱도의 끝을 의미한다. 그 안에는 인간 생존의 진지한 열정이 들어있고, 가족을 부양하려는 아버지들의 절절한 삶의 애환이 스며있다. 이 존엄에 가까운 단어가 지금 미디어에서 눈요기 거리에 미치지 못하는 쇼로 탈바꿈되고 있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 막장 방송이 그것이다. 막장 드라마는 이미 익숙한(?) 소재가 되었으며 유뷰브 방송이 활성화 되면서 막장의 영역은 넓혀져 가고 있다. 최근 한강에서 숨진 대학생 손모씨의 경우, 수많은 유튜버들이 분별없는 뉴스를 생산하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 전문기관에 따르면 이렇게 양산된 찌라시로 삼천 만 원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사회 곳곳에 새디즘적 관음증

 막장이라 불리우는 극들은 고부간의 갈등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지나서 이제는 남편의 애인, 아내의 애인 등 불륜 소재로 확대되고, 극 전개에 따라 드러나는 출생의 비밀과 애정의 삼각관계는 도를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 막장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정말 무엇인가.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하므로 동시대인들의 반성과 회개를 이끌어내려는 것인가. 의도는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인간의 죄악상과 가정 해체, 인간의 종말이라는 소재를 최대한 소비하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남의 비극으로 쾌락을 맛보려는 새디즘적 관음증은 아닌가. 결국 시청률, 접속률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 바닥에서 생존해보려는 비열한 욕망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문제는 막장 뒤에 도사린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막장이 가장 악마적으로 활개친 일은 n번방 사건이 아니었을까. 사이버와 모바일 세계가 왜곡된 성도착증에 의해 희생되어선 안되는데 말이다.

 

 

 권태의 정체

 종말의 시대에 만연한 특징 중 하나가 권태감(boredom, tiredness, ennui)이다. 일상이 반복되며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낄 때, 권태가 시작된다. 사회가 건강하고 활력이 넘칠 때 권태, 우울증 등은 줄어든다. 하지만 고도 경쟁사회가 지속되고, 생의 의미가 고갈되어가는 영역에서는 권태가 고개를 든다. 학생은 학교 생활에서 지겹다 느끼고, 직장인들은 회사 생활에서 지쳐갈 때 무기력해진다.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알게 모르게 권태에 병들어 가는 경우도 있다. 사랑이 식어가고 사랑이 형식화 되어 가는 종말의 현상이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24:12). 예수님이 경고하신 마지막 때의 풍경이다.

군대는 또 어떤가? 군대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방의 최전선에서 철통방위 태세로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경계와 훈련은 군대의 생명이다. 그러니 활력이 넘치고 기백이 끓어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미디어에 다시 떠오른 성폭력, 성추행 등 불미스런 사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피해군인이 목숨을 끊기까지 고통 당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들의 의식은 어떠했단 말인가. 단지 가해자 개인들의 일탈행위로 보기에는 군대의 명예가 용납할 수 없어 보인다. 군기강 해이는 정신건강(Mental Health)의 전반적 문제로 다루어야 하며 그러기에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가정, 학교, 회사, 사회,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진단해야 할 문제이다.

 

 

 고도 성장의 그림자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육이오 전쟁의 깊은 수렁 속에서 재건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군사, 외교 등 여러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OECD, G12 등에 속하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한류는 이런 성과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K-Pop, K-Food 등에 이어 아카데미 수상 등극, BTS의 세계적 인기,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K-방역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드러내었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등 여러 분야에서 수출 업적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항공산업, 우주개발 등도 힘차게 도약하고 있으며 앞으로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분야에서 K-Bio의 약진을 기대한다.

하지만 자랑만 할 수 없는 통계들도 있다. 한국은 부정적인 면에서 세계의 수위를 달리는 것도 있다. 음주율, 흡연율, 출산율, 자살율 모두 심각한 수준이다. 고도 성장 뒤에 가려진 사회의 풍속도이다. 화려한 거리의 뒤편에서 자라고 있는 암적 존재라 하겠다. 지하경제가 점점 커지는 문제와 같다고 할까.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 거기에 활개치는 투기세력, 정당한 정쟁(政爭)으로 보기에 안타까운 여야의 대립은 국민 분열이라는 상처를 남긴다. 젊은 층이 안정된 사회에 회의를 품고 가상화폐, 주식 등에 몰려가는 영끌현상은 정상 사회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코로나 방역만 중요한게 아니라 정작 우리 사회의 정신위생(Mental Hygiene)도 진지하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권태는 이미 우리 일상을 좀먹고 있는 정신의 공백상태이다.

 

 

 권태와 부정적 종말론

 권태는 아메바 같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고 분석하기도 어렵다. 권태는 규정하기에 모호하고 증상도 여러 가지다. 무기력, 무감각, 무관심, 무의미, 허탈감 등이며 이유를 잘 모를 경우가 많다. 소외감, 좌절감, 낙망감, 박탈감 같은 소극적 자세에서 불안, 공포, 분노, 증오, 폭력 등의 공격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 불안, 사회 격리, 봉쇄에서 오는 증오와 폭력은 만연한 권태감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막장은 권태를 극복해 보려는 욕망의 부정적 결과라 하겠다.

막장과 함께 우리 시대에 다시 등장한 용어들이 바로 종말이다. 예를 들면 2012년에 나온 영화 <2012>는 자연 재해를 통해 지구의 종말을 경고했다. 종말은 다양한 합성어로 우리 사회를 알려준다.

공교육의 폐단을 노래하는 학교의 종말, 다양한 환경 변화로 고초를 겪는 가정의 종말, 일해도 일해도 가난과 씨름해야하는 노동의 종말,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되어가는 과식의 종말,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자꾸 줄어드는 출산의 종말, 그와는 거꾸로 생명 연장이 가져다주는 축복아닌 저주로 뒤바뀔지도 모를 고령의 종말, 여기저기 용하다는 정보를 찾아다니다 허무로 끝나버리는 접속의 종말, 돈되는 데에 기웃거리다 패가망신하는 투기의 종말, 소비는 미덕이다, 소비자는 왕이다의 소비의 종말, 너죽고 나죽자고 싸우는 정치의 종말, 그래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권력과 폭력의 종말, 국가의 종말, 사회의 종말, 종교도 정치적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고 있는 종교의 종말, 개인이기주의로 치닫는 신앙의 종말,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시대의 병적 증후군인 인간의 종말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종말이 종말을 고하는 이 시대에 희망마저 종언을 고하고 있단 말인가.

 

 

 길과 진리는 교회로부터

 비록 우리 시대에 종말의 종말이 화산재처럼 대지를 덮을지라도 그래서 어둠이 기습할지라도 희망이 있다, 우리가 아직 교회의 종말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희망은 있다. 그곳은 어머니가 짜주는 생명의 젖이 흐르고 아버지의 따스한 손이 우리를 세워주신다. 태양이 빛을 잃는다해도 거기에서 생명과 소생의 빛이 비추인다. 비록 종말의 종말 시대에 돌입했다 할지라도 교회가 종말을 맞지 않았다면 구원은 있다.

구원의 예수님이 선언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지금은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10:4)하는 시대이다. 진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만연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트랜스휴먼 시대에 돌입한 시대는 분명 종말의 때이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권태에 흔들리며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해 방황한다. 영적 혼란 시대에 교회를 비방하는 사건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할지라도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우신 거룩한 교회로부터 선포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위협적인 인본주의, 공중 권세 잡은 자의 파괴력, 가공할 이데올로기와 시대정신(Zeitgeist)도 이 믿음의 반석을 어찌하지 못하리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교회가 선포하는 구원의 복음에 귀 기울이라. 그리하면 살리라!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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