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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교수의 문화칼럼 - 담임 목사실은 ‘24H’ 오픈 중 - 목회자를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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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조어 “24H” 

 하나둘 씩 거리에서 새로운 간판이 늘어난다. 사업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코로나에 롤러코스터 타듯 양극화 골이 깊어지니 미디어는 연일 폐업 수, 개업 수 통계를 보도한다. 어서 속히 경제가 회복되고, 국민들 삶의 질이 평안의 매는 줄로 안정되기를 기도한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30:8). 주님의 공정의 끈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소서.

낯선 간판이 보인다. 무슨 암호 같다. 24H. 24시간 영업한다는 뜻이라 한다. 뽑기 놀이 하는 가게도 24H 붙어 있고, 자동으로 라면요리가 되는 가게도 24H가 붙어 있다. 자동화로 고객을 접대하는 이른바 전천후 고객응대 시스템이다. 24H 체제로 직원을 고용한다면 3교대를 해야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24H 가게는 편리와 실익을 쫓는 현대판 상술임에 틀림없다.


 극한 직업

 2019년도에 천만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가 있었다. “극한직업이다. 코미디 스릴러 장르의 영화는 정말 극한 직업의 양극화를 유머러스하게 처리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잠복근무하는 형사반은 극한 직업 중에 극한 직업이다. 여기에 치킨 집 또한 극한 직업에 속한다. 밤낮 없이 닭을 튀겨야 하니 말이다. 헌데 세상에 극한 직업이 어디 한 둘인가.

 

 목회라는 극한 직업

 목회(Ministry)를 일반 직업군에 넣는다면 심기가 불편하다. 목회는 분명 소명(Calling)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여 순종해 가는 삶이 목회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21: 15-17)가 목회의 출발이다. 이는 예수님이 이 마을 저 도시로 밤낮없이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구원의 도를 전하시기 위해 식사할 겨를도 없는”(3:20) 일정을 지내셨던 것처럼 목회자도 그 길을 따른다. 극한 직업이라는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이보다 더 극한 직업은 없다. “세상에 지금까지 이런 직업은 없었다. 이것은 목회인가 극한 직업인가.”

 

 현대 사회에 통용되는 노동권으로 따지자면 목회보다 더한 극한 직업은 없다. 보통 노동자는 일 8시간, 주당 40-45시간, -금을 일한다. 휴가도 유급휴가, 무급휴가, 월차, 연차 등 노동복지에 더하여 육아휴직, 생리휴가 등 이러저러한 휴일도 있다. 여기에 병가, 반가, 결혼과 장례 시에 가능한 휴가도 받을 수 있고 공식적인 공휴일이 있다. 이렇게 보면 목회자는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독일의 경우, 목회자는 정기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본 교회 담임목사의 휴가는 00~ 00일이므로, 이 기간에 예배는 옆 동네 교회에서 드립니다.” 이런 공고문이 교인들에게 알려진다. 어떤 교인도 여기에 의문과 토를 달지 않는다. 담임목사 휴가 시에 설교가 없으므로 옆 교회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우리의 경우라면 무슨 난리가 일어날까. 가히 상상이 간다. 우리나라라면 담임목회자가 휴가를 내고자 하는 때 당회나 교인 눈치를 봐야하니 노동권으로 보자면 심각한 갑질 피해사례라 하겠다(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겠지만). 한국 목회자의 대부분은 24시간 깨어있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꺼놓을 수가 없다. 결국 24H 근무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12시이고 새벽 3, 4시이고 상관없이 목회자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비상시에 목사님이 잠을 자고 있다니라거나 목사님이 잠이 많아서야....’는 불평이 터지지 않겠는가. 담임목회자 휴대폰은 그야말로 24H 오픈이다. 직업으로 보자면 극한 직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 교인의 목회자관()은 이상하게 이중적이다. 교인들은 열심히 살아 좋은 집에 좋은 차를 타면서도 목회자는 낡은 집에 초라하게 살아야 참 신실한 목사님이야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가 메는 넥타이를 예로 든다면 그 반응이 경악스러울 때가 있다. 빨간 색을 하면 보수라거나, 파란 색을 하면 진보라거나, ‘야휴 목사님 왜 그런 색 넥타이를 하셨어요?’ 아마도 선거철이 되면 그런 반응은 더 심해질 것이다. 넥타이 메는데도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극한 직업이다.


 위로하라, 담임목사를 위로하라

 코로나로 인해 방역의 일선에서 수고하는 의료진, 경찰, 군인, 일반직 공무원 등 수많은 직업군이 애쓰고 있다. “당신 덕분입니다.”를 자주 외쳐도 감사의 표현은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번 코로나로 피해 아닌 피해를 입었고, 사회적 비난까지도 겸하여 받았다. 갑작스레 비대면 예배로 바뀌어 준비하느라 혼란이 있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고민과 염려를 감당해야 했던 이는 누구였을까. “내 양을 치라에 순종하는 목회자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 담임목사는 누구보다 교회와 교인의 안위를 끌어안고 기도하며 울부짖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양을 먹이라라는 소명을 잊을 수 없기에.


 이제 백신도 가능하고, 치료제 개발 이야기도 솔솔 들려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 방역에 수고한 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는 당연히 보내야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인사는 정작 우리 교회에도 해당된다. 코로나로 인해 비난을 감수하고, 줄어든 교인과 그들의 회복을 위해 밤낮없이 파수꾼처럼 깨어 지킨 우리 교회 목사님을 생각해야 한다. 그분들에게도 감사와 위로의 표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언하자면 개 교회는 목회자 위로의 날이라도 만들어서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위시한 모든 목사님들을 위한 감사와 위로의 표현을 하면 어떨까. 말씀이 떠오른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6). 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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