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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교수의 문화칼럼 - 하지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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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창조와 예배의 연장

 

 하지의 뜻

 우리나라 24절기를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농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근본은 자연의 순환이며, 이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24절기는 창조에서 출발한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세계가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621일은 하지, 드디어 여름에 입성한다는 하지(夏至)를 맞는다. 이날은 한 해 중에서 태양이 가장 높게 뜨고 낮이 가장 길다. 농사로 얘기하자면 밭갈고 씨 뿌리는 봄농사를 마치고 여름농사로 돌입한다. 날은 더워지지만 일손은 바쁘게 돌아간다. 모종 살펴야 하고, 넉넉한 물대기를 위해 물꼬도 터줘야 하고, 해충도 잡아야 한다. 농부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얘들아 이제 뜨거운 햇살 아래 무럭무럭 자라거라.’ 노동으로 말하자면 하지 즈음에는 일손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노동의 역군이 힘차게 일할 때이다. 직업 소명(루터에 의하면 부르심의 뜻으로 Berufung, 직업의 뜻으로 Beruf, Calling)을 받은 크리스찬들도 예외는 아니다.

 

 CCM 유감

 그런데 하지를 맞는 현대 한국교회는 어떤가. 찬양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교회들은 도시적 감성에 젖어있다. 농어촌, 산촌 구분이 따로 없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도 유사하다. 영성은 방송과 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전파되니 유행하는 찬양은 교단과 지역에 구분이 거의 없다. 주제는 치유와 회복(Healing), 소명, 축복(Blessing), 찬양과 경배(Adore & Worship), 내적 조명(Insight), 감사, 고백(Confessing) 등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찬양은 성경이 이 시대에도 권하시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 생활에 뭔가 부족해 보인다. 굳이 절기와 관련해 살펴보면 2% 보다 더 많이 부족해 보인다. 20%가 부족하다고 할까.

 

 일은 창조와 예배의 연장

 일과 노동에 대한 감사와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시대에도 똑같이 권고하신다. 열심히 일하라! 성경 처음 책 창세기에서부터 일에 관해 말씀하신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3:19). 근본적인 의미의 일이 현대에 와서 많이 왜곡되기는 했다.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조차 사회학적 노동관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노동이 교환가치로 평가된다는 말이다. 노동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 조류에 물들어 간다. 일 자체에 흥미를 갖고 즐기기 보다 얼마나 버느냐로 일을 평가한다. 우리의 직업, 즉 모든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소명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이 다스림을 문화위임명령(Cultural Mandate)라 하는데, 곧 창조의 모방, 창조의 연장, 창조의 재창조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Homo Imago Dei)으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가꾸어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직분을 맡았다. 모든 인류는 곧 청지기로 부르심(Stewardship)을 받았다 하겠다.

열심히 일한다는 표현은 죽기살기로 돈벌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동시장에 나가 노동을 파는 것이 아니다. 비록 세상은 노동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교환가치로 바꾸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은 노동의 본질적 의미인 신의 창조”(Divine Creation)를 본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 “나를 본 받으라는 말씀이나 바울 사도, 요한 사도의 본 받으라는 말씀을 영적, 윤리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일에서도 성경의 진정한 가르침, 즉 영적, 현실적 조명을 받아야 한다.

종교개혁의 선조인 루터와 칼빈은 어떠했는가! 당시 하찮게 보았던 일들을 예배의 의미로까지 이해하여 가르쳤다. 농부가 밭에서 일하는 것, 목동이 짐승을 키우며 젖을 짜는 일 등이 모두 하나님의 소명이며 그래서 신성한 노동이라 여겼다. 예배는 성전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농부의 밭, 목동의 우리에서도 이뤄지며, 그곳에서도 주님은 예배를 받으신다고 말한다. 가히 시대를 뒤흔들고 변혁시키는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이 깨달음은 사람의 지혜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서 온 것이라 믿는다.

 

찬송가 330어둔 밤 쉬 되리니

그러므로 일해야 한다. 일하되 설렁설렁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는 일 중독에 이르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와 섭리에 맞는 본분으로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24절기에는 노동요라는 게 있어서 서로 함께 도와가며 즐겁게 효과적으로 일하게 했다. 상부상조(相扶相助), 사람맛 나는 세상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참으로 조상의 지혜로운 예술이라 하겠다. 헌데 믿는 우리들은 어떤가? 기독교적 노동요라는 게 있는지, 아니면 그 많은 CCM 가운데 노동요다운 노래가 있는지. CCM에서 노동의 참다운 의미와 열정이 들어있는 노래가 얼마나 있는지.

특별히 하지 절기에 떠오르는 찬송이 있다. “어둔 밤 쉬 되리니라는 찬송이다.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 찬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세상은 지금 휴가 계획 짜느라 분주할 것이다. 유럽 분위기는 이미 3-4월부터 부서간 휴가기간을 조정한다. 현대 사회의 강도 높은 노동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라는 표현은 배부른 자들의 갑질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오해와 편견을 넘어 일과 노동으로 실현하는 진정한 영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짓날은 낮이 가장 길다지만 여기에 반전(反轉)이 들어있다. 다음날부터는 낮이 짧아져 간다는 사실이다. 점점 일할 수 있는 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9:4) 그 밤이 오기 전에,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열심히 일하도록 하자. 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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