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정

문화 이야기 분류

추교수의 문화칼럼 - 중독의 자기파괴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 치유와 회복에 목마른 현대인 

 

 열정에서 중독으로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 중독이 만연하고 있다. 일상을 전하는 사건 사고 뉴스는 조용할 날이 없는데 그 원인이 중독이다. 중독(中毒)에 버금가는 용어로는 열심, 열정, 집중, 몰두 등이 있는데 이런 표현은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에 열중하면 일중독이라 하는데 이 정도는 칭찬 수준이다.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좋다는 것이다. 자기 일에 열심 내는 경우라 하겠다. 바울사도께서 자기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좋게 보셨다.“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2:4).“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긍정의 중독

 교회 일꾼이 되려면 최소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긍정적이며 칭찬에 가까운 의미로서 중독이다. 이 경우 중독은 열정에 대한 존중이라 하겠다.“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딤전 3:1). 중독을 좋게 활용하자면 선한 일의 경지에까지 이를 때이다. 긍정적인 의미의 중독이다. 교회의 제직으로 장로, 권사, 집사 등도 마찬가지라 본다. 선한 일을 사모하고 열심히 충성하는 모습이 곧 맡은 자들이 해야할 본분이다(고전 4:2).

 

 부정의 중독

 반면 중독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현대 사회에 두드러지는 극단적 상황이 이런 경우의 중독이다. 술에 대한 속설이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는다. 그러다 지나치면 술이 사람을 먹는다. 이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된다. 짐승만도 못한 쯔쯔... 하며 세인들이 혀를 차는 데로 치닫는다. 부정적인 중독은 그만큼 사람을 상해한다. 중독이 사람을 잡는 경우에 이르면 곧 비극의 탄생으로 직결된다부정적인 일중독은 일에 몰두하다(그것이 성과이던지, 성취욕이던지) 가정도, 식구도 잊어버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고 일에 빨려 들어간다. 이 일중독(Workaholic)은 종종 급작스런 과로사에 이르게 한다.

 

 다양한 중독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중독은 더 있다. 먹는 것과 연관되어서는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마약 중독, 단백질 중독, 탄수화물 중독 등을 손꼽는다. 원치 않는 경우 약물 중독이 가능하고, 생활 속 다양한 제품을 타고 우리 몸에 중독을 일으키는 현상이 적지 않다. 사회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는 호흡기에 중독 현상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용자가 목숨을 잃을 정도의 상해를 입혔고,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몸과 관련해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열심이 도를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성형이 그것이다. 원래 정형외과적인 수술이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나타난 현상인데 우리나라 특정 지역이 성형외과의 메카라 불리울 정도이다. 성형 수술은 일부 사람들에게서 중독 수준으로 발전하여 몸과 마음과 생활을 망치기에 이르기도 한다. 성형 부작용 또는 불만족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건도 있었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 부른 비극은 그치지 않는다.

 명풍은 독특하고 잘 만들어져서 가치 있다. 명품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눈길이다. 그런데 명풍 중독이 있다고 한다. 명품 아니면 거리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단다.‘이거 이래 봬도 명품이야.’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우쭐거린다. 명품에 목숨 거는 이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있어서 계를 해서라도 명품을 갖고자 한다. 겉보다는 속이 더 중요한 게 삶이다. 그런데 외형에 더 신경 쓰는 외식이 판친다. 집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고, 그럴싸한 명함을 만들어 내보이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르신다.“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음주운전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그 심층적 원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술에 관대한 문화라고 하지만 이는 문화로 부를 수 없는 악습이다. 소화 촉진을 위한 반주(飯酒)라는 명분으로, 분위기를 위한 명분으로한 두 잔은 괜찮아’‘상관이 주는 잔을 안 받아!’는 결국 음주운전으로 돌진한다. 보편화된 술 관대 문화는 실상 파고들면 알코올 중독과 연관된다. 무의식적 알코올 중독사회라는 증거다. 유럽 중에서도 맥주가 일상화된 독일 같은 나라, 보드카가 대중화된 러시아를 위시한 슬라브 계통 나라, 그리고 포도주가 만남의 자리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이태리, 프랑스, 그리스 등등의 나라들에 잠재적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는 통계다. 이들은 거의 중독 직전으로 술과 친하다고 하니 중독 단계로 넘어가 재활치료를 받아야할 대상인 것이다.

 

 중독에 중독된 인간에게 구원을

 중독은 잘못된 습관이라 하였지만 의학적으로 심각한 질병으로 분류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 이렇게 외부 자극과 조건에 고개 숙이고 노예가 된다니.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자유이거늘, 어떻게 인간이 스스로 노예가 된단 말인가. 그것도 자기파괴 수준으로. 주님은 말씀하신다.“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죄의 힘은 멀쩡한 사람을 중독으로 끌어내린다. 마치 소문에 흉흉한 물귀신같다. 같이 죽자며 물로 끌어당기는 그런 가증한 놈 말이다. 중독은 은밀하고 반면 막강하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죄가 바로 그런 놈이다.“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8:20).“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8:21) 떨어뜨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독에도 구원이, 이 구원의 중심에 주 예수님의 복음이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내 귀에는 문득 이렇게 들린다.‘너희가 죄의 중독에 빠져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죄 가운데 있는지, 중독에 빠져있을지라도 내가 건지리라.’오 주님, 저희를 중독의 세대 속에서 건져주옵소서! 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