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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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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태화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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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날, 은혜의 날


혁명은 오래된 이름이다. 지구상에서 혁명이란 단어가 사라진 것은 참 오래전의 일이다. 역사책에서 혁명을 찾으면, 영국의 명예혁명(1688), 산업혁명, 프랑스의 혁명(1789),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1917) 등 과거에 속해있다. 그래서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정권으로 유지되던 동독(1949-1990)에서 혁명이란 단어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1989년 10월 9일 동독 평화혁명(Peace Revolution)이 그것이다. 올해는 금세기의 명예로운 평화혁명 2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중요한 것은 이 평화혁명의 중심에 동독 교회와 성도들이 서있었다는 것이다. 동독은 1949년 소련의 위성국가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히틀러 독재로 시름하던 독일의 한 부분이 사회주의 독재로 또다시 긴 어둠의 역사로 빨려 들어갔다. 동독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쌓고 독재와 탄압을 강화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장벽과 국경을 넘다 사살되었다. ‘슈타지’라고 불리는 비밀경찰은 시민들을 감시, 통제, 체포했고 동독 시민들 사이에 불안, 체념이 팽배했다. 이 때 교회가 나선 것이다. 교회는 사회주의 정권 안에서 조용히, 꾸준히 하나님 나라의 파수꾼이 되어 시민들을 지켰다. 1976년 브뤼제비츠 목사가 정권에 항의하면서 분신하는 사건도 발생했고,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감옥에 투옥되었다.

1982년 월요평화기도회는 평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평화기도회는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평화! 비폭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7년 뒤인 1989년 10월 9일, 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인파는 7만 명, 나중에 합세한 시민들까지 15만 명이 되어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여리고성을 돌듯이. 출동한 군경은 발포하지 못했고, 사회주의 정권은 총사퇴하고 국경을 개방했다. 이 날은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었다”(고후 13:13). 하나님이 주도하신 혁명, 평화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듬해인 1990년 독일은 통일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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