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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 내안의 상처, 네안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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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상인 관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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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상인 관장인천여성인력개발센터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생애전체를 지배한다.

최근 톱뉴스를 장식했던 김길태의 삶은 어릴 때부터 특별한 게 없어 보이지만 그가 어린 시절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고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충격과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데서부터 삐뚤어짐과 일탈이 시작되었다. 자신을 이겨내지 못한데서 오는 유약함과 충분히 위로받지 못함에서 오는 자기소외로부터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 탓이리라.

우리 모두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상처로 인한 괴로움을 당한다. 가끔은 그것이 너무 커서 고통스러워하며 정신적인 병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을 가져오기도 하며 자신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혹자는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보복을 함으로서 보상받는 심리도 있다.

인간이 세계를 정복하고 과학의 발달을 통해 못할 것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임을 입증하는 모습이다.

쉽게 상처를 이겨내는 사람은 건강하고 진취적일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지지를 받아왔으며 인정을 받고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쉽게 털고 일어나며 그다지 아픔의 늪에서 헤매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니 가정에서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하며 인정을 받아야만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

신학기가 되어 새로 학교생활을 하는 귀여운 꼬맹이들이 와글거리며 학교와 집을 오간다. 새로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도 보이고 고등학생들, 대학생들의 3월은 분주하고 새롭고 희망차다. 그러나 그 속에 소외를 느끼며 부적응에 힘들어하며 삶의 무게분량이 유난히도 커서 힘들어하며 조금씩 생기를 잃고 병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사실이다. 그들의 병을 우리가 치유할 수 있을까? 경쟁이 필수인 집단생활 속에서 그들이 우뚝 발 딛고 서서 커나갈 수 있을까?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불확실로 한없이 우울한 아이들의 무거운 어깨를 보듬어줄 수 있을까?

남의 괴롭힘보다 외려 자신 안에서의 자아학대나 자아포기가 더 무섭다. 점차 심해지고 곪아서는 터져서는 이상행동과 범죄로 자신도 남도 병들게 한다. 남을 괴롭히고 남을 학대함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해소를 해야 하는 질병이 될 수 있다는 것,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아닌 마르다를 편드셨다. “마르다는 좋은 것을 택하였다”

또 삭개오의 외로움을 해결해주셨다. “내가 오늘 너와같이 가겠다”

우물가에서 만난 부정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 청하셨으며

부정한 여인이 집단 이지매 당함으로부터 해방하셨다. “너희중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들은 한결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행동과 삶 그리고 갈등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달 3월, 다가감으로 치유가 가능한 아이들이 학교라는 집단속에서 오히려 외로움과 싸우고 고통 받는다면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단정 짓기는 성급하다.

마이너리티, 소외된 이웃에 대한 배려와 돌봄의 작은 실천이 사회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 또는 망(net)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랑 밥 같이 먹을래?”

“김형, 차 한 잔 합시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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